한국 웹툰, ‘원·나·블’ 공습 지키고 ‘신·노·갓’ 탄생시킨 비결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어디서나 만화는 ‘원·나·블’이 최고 인기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원·나·블’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한국에는 ‘신·노·갓’이 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웹툰&웹소설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김준구 셀장은 지난 16일 네이버 사옥 그린팩토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원·나·블은 일본 소년점프의 3대 만화인 원피스·나루토·블리치를 말한다. ‘신·노·갓’은 한국의 웹툰 신의 탑·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의 약자다. 한국에 경쟁력 있는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만화의 국내 시장지배를 막았다는 의미다.
김 셀장은 현재의 웹툰 비즈니스를 구축한 산증인이다. 네이버 웹툰을 처움부터 기획해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의 요일제 시스템, 신인발굴 시스템인 ‘베스트 도전’, 수익모델 등을 만든 것이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유력 비즈니스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차세대 혁신가 12인에 뽑히기도 했다.
김 셀장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라는 파고로 인해 휘청거리던 한국의 만화 산업을 웹툰이 지켜냈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당시 인터넷에 불법으로 스캔된 만화들이 범람해 만화계는 큰 위기에 빠져있던 상황이었다. 불법복제로 인해 책 판매부수는 줄고, 만화잡지들도 줄어들면서 작가들은 작품을 유통할 플랫폼을 잃어버렸다. 또 온라인 게임 등으로 주요 독자층이 빠져나갔다.
웹툰이 등장하면서 작가들이 연재할 공간이 생기고, 신인작가가 등장할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빠져나간 독자들도 잡을 수 있었다.
김 셀장은 웹툰이 단순히 만화 산업을 위기에서 지켜낸 것을 넘어 만화산업의 규모를 키우고,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한국만화의 전성기 시절인 1990년대 중반 10개의 만화잡지에서 연재하던 전업 작가는 국내에 약 200명 정도였다. 현재 네이버나 다음 등에서 전업으로 웹툰을 그리고 있는 작가는 700명 정도다. 또 당시에는 밀리언셀러 작품이 손가락에 꼽혔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다.
김 셀장은 웹툰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 “만화를 계속 보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프로그래머 출신의 김 셀장은 대단한 만화광이다. 만화 브로마이드 하나를 얻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가서 1박2일 줄을 섰을 정도다. 그는 “1990년대 초중반 빅히트 만화가 나온 이후 히트 만화가 많이 줄어들면서 만화산업이 위축됐다”면서 “사업적 이유가 아닌 만화를 계속 보기 위해 웹툰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웹툰은 한국 콘텐츠 산업의 대표로 떠올랐다. 현재 약 150편의 웹툰을 연재하는 네이버의 경우 하루 620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한국의 웹툰에 관심이 많다. 특히 만화 산업의 최고봉인 일본에서도 한국의 웹툰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일본의 3대 만화잡지 출판사에서도 네이버를 방문해 웹툰 시스템을 둘러보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만화산업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발행부수 600만부를 자랑하던 만화잡지 소년점프가 최근에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캔만화 같은 불법복제는 적지만,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일본인들이 만화책을 손에 잡는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김 셀장은 “인터넷과 모바일은 만화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서 “한국의 웹툰은 이 파고를 가장 먼저 넘은 성공사례”라고 말했다.
최근 네이버는 ‘라인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42개의 영어 작품과 50개의 중국어(번체) 작품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김 셀장은 “우리나라 작가들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웹툰이라는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으로 콘텐츠와 서비스를 발전시켜가겠다”고 말했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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