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인공지능(AI)이 각광을 받으면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친근한 이름이 있다. IBM의 '왓슨'.  

러나 그 '왓슨'(Thomas, J, Watson)이 실제로 IBM 제국의 회장(CEO)을 지냈던 1960년대, 전세계 10만명이 넘는  IBM의 직원들중 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왓슨 회장이 당돌한 한국 출신의 한 청년 직원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과 대단히 가까운 사람중 하나일 겁니다. 내 어머니는 한-미 재단 이사장이고, 또 내 아들은 미군 중위로 동두천에서 근무했습니다.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IBM이 한국에 아직 진출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귀하의 편지로 처음 알게돼 무척 놀랐습니다. IBM의 한국 진출 문제를 검토하기위해 곧 IBM의 아시아 담당 일행이 한국에 파견나갈 계획입니다.

▲IBM 본사 시절의 이주용 회장

왓슨 회장으로 부터 이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는 청년은 KCC정보통신의 설립자 이주용 회장이다. 

앞서 IBM의 말단 직원이었던 이 회장은 왓슨 회장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회장은 IBM의 제1호 한국인 입사자다. 

“나는 IBM 직원번호 955812입니다. 지금 휴가를 받아 고국인 한국에 와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크지 않지만 60만 대군을 유지하고 있어 시장성이 적지않습니다. 지금 이 시장에 진출하지 않으면 IBM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호기스러운 편지 한 통으로 인해 IBM의 한국 진출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리고 28세의 청년, 이주용이 초대 IBM 한국 대표가 된 것이다. 세계 톱 10 기업의 반열에 올라있던 IBM의 한국 진출은 당시 외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섰던 군사 정부에게도 매우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이 회장의 IBM 한국대표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 컴퓨터의 개념도 몰랐던 무지했던 시대, 그 어둡던 시대를 젊은 패기 하나로 뚫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았고, 여기 저기서 상처를 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 회장이 지난 2007년 발간한 회고록('나의 인생')에는 이같은 초창기의 역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년전 회고록이 출간될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내용들을  지금 다시 음미해 보니 새삼 역동적이고, 감동적이다. 

이 회장은 IBM 한국대표를 마치고 다시 IBM 본사로 돌아가 SBC(서비스) 조직을 거쳤다. 이후 IBM을 정리한 뒤 한국생산성본부 부설 전자계산소장을 맡아 한국의 IT 발전에 헌신하게 된다.  

이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이 열악했던 한국의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국민소득 8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이 회장은 한국이 지독히도 못살았던 이유를 '혁신의 실기'에서 찾았다. 19세기 1차 산업혁명 시기에 편승하지못해 근대화가 늦어져 일제 식민지 병탄의 아픔을 겪었는데, 또 다시 2차 산업혁명, 정보화시대 경쟁에서도 뒤쳐진다면 영원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단법인 한국전자계산소(KCC정보통신의 전신)가 독립해서 본격적으로 IT사업을 시작한 날이 50년전인 1967년10월12일이다. 

무엇보다 KCC정보통신 설립이후, 이 회장이 역점을 둔 것은 IT교육 사업이었다. 1960년대 후반, 당시 KCC는 정부로부터 과학교육위탁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수많은 IT전문가들을 길러냈다. 이들이 결국 자양분이 돼 30년후 한국을 IT강국의 반열에 올려 놓게 된다. 이 회장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이 부분을 가장 의미있는 일로 평가하고 있다. 

KCC정보통신이 출범한 이후, IT와 정보화에 대한 정부 및 민간의 인식도 차즘 개선되면서 국가의 정책 지원도 늘어났다. 

▲이주용 회장이 역점을 뒀던 IT교육

그러나 오히려 KCC의 사업환경은 그 때부터 악화됐다. KBCC(금융기관전자계산본부), GCC(과기처 산하 중앙전자계산소),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이 생겨나면서 기존 KCC의 전산화 관련 일감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급여일이 가까와지면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했다.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혹자는 KCC정보통신이 컴퓨터 분야의 선도업체였고, 정부가 IT및 정보화 육성에 적극적이었기때문에 비교적 사업하기가 순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회장은 그 누구 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공공, 국방, 금융 등 꾸준하게 고객사를 확보하면서 성장을 이어갔다. 경쟁이 치열한 국내 SI및 IT서비스 시장에서 쌓은 50년의 업력은 단순히 숫자 그 이상의 의미가 응축돼 있다. 다른 대기업 계열 SI업체들이 모기업 물량으로 쉽게 쉽게 성장한 것과 비교할 수 없다.  

1994년, 이 회장은 장남인 이상현 부회장에게 경영을 맡기고 미련없이 일선에서 후퇴한다. IT의 속도가 너무 빨라졌고,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컴퓨터에 관한 세미나가 있어 미국에 갔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게 이 회장이 밝힌 은퇴 이유다. 

이 회장은 후배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주문한다. 소프트웨어(SW)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더 크게는 후배들에게 'IT가 가진 무한한 가치를 믿고, 노력해 달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KCC정보통신이 12일자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KCC정보통신은 이날 각계 인사 700여명을 초청해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IT업계는 'KCC정보통신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IT서비스의 역사'임을 인정한다. 여기에는 KCC정보통신의 설립자 이주용 회장의 헌신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포함됐다.    

지난해 이상현 부회장은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부자가 우리 나라 IT산업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상훈 대표도 IT서비스 회사인 시스원을 견실하게 이끌고 있다.    

▲이주용 회장

직원수 400여명의 KCC정보통신은 중견 IT서비스기업으로서 여전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KC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 개편이 최근 몇년간 이뤄졌다. 

오토(자동차판매)사업이 커지면서 일각에선 'KCC정보통신의 주력이 자동차 사업으로 바뀐거 아니냐'고 하지만 KCC정보통신과는 관계없는 별도의 회사다.

KCC정보통신의 2016년 매출액은 945억7000만원이다. 올해 매출 목표액은 12000억원 수준으로 잡고 있다. 공공,금융 등에서 꾸준한 강점을 보이고 있으며, 여전히 SI(시스템통합)사업이 회사의 주력이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IoT(사물인터넷) 등 신사업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KCC정보통신은 차량자가진단장치(이하 OBD) 전문기업과 협력해 커넥티드카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고, IoT 기반 커넥티드카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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