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은 6일 NTP(넷마블 투게더 위드 프레스) 행사에서 “넷마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스피드 경쟁력이었는데 이제 솔직히 시인하는 게 좋겠다”며 “스피드 경쟁력이 하락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넷마블도 중국 회사와의 속도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공장에서 프레스로 찍어내듯이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찍어낸다고 보면 오산이다. 최근 게임들은 완성도가 수준급이다.

현재 중국에선 대형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도 개발 착수 1년이면 출시한다. 국내 대형 게임사보다 2~3배 빠른 속도다.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배틀로얄(생존경쟁) 게임도 중국에서 4개월 만에 짝퉁을 만들어냈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넷마블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NTP 발표자료를 처음 만들 당시엔 스피드 경쟁력 ‘하락’이 아니라 ‘상실’로 넣었을만큼 속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외부 반응을 고려해 그나마 순화한 단어가 ‘하락’이었다.

넷마블이 이 정도 판단을 내렸는데, 여타 게임기업은 오죽할까. 다들 표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지 조심스레 짐작할 수 있다.

◆‘스피드 경쟁 밀렸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

매번 연단에 설 때마다 자신감이 넘치던 방 의장이 이번엔 “스피드 경쟁에서 밀렸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업계 입장에선 굉장히 큰 위기를 맞딱뜨린 것이다. 기자는 2년 전에 이 같은 위기를 체감한 적이 있다.

기자가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치타모바일을 방문할 당시였다. ‘클린마스터’ 등 최적화 앱으로 유명한 업체다. 이 회사는 직원 평가를 수시로 진행한다. 정성적 평가는 없다. 모든 평가를 수치화하고 S급부터 등급을 나눈다. S등급을 받으면 기존 월급에 9배를 준다. 우리 돈으로 5000만원 이상 월급을 받아가는 직원도 나왔다.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선 등급을 잘 받기 위한 피튀기는 경쟁이 이어진다. 당시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B등급이 이어지거나 그 밑의 평가 등급을 몇 번 받으면 짐을 싸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알아서 회사를 나가는 것이다. 수시로 퇴사가 이어지나 인재 채용엔 문제가 없다. 회사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이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일 잘하는 S급 인재만 남는다. 이러한 치타모바일 같은 업체가 중국엔 수백군데가 있다. 게임회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훌쩍 늘어날 것이다. 넷마블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은 이런 회사들과 스피드 경쟁을 하고 있다.

◆게임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제조업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넷마블 내부 목소리를 들어보면 ‘정시 출퇴근’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다. 저녁에도 남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넷마블이 이를 막고 있다. 추가 근무, 야근이 필요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퇴근을 시킨다. 한 개 층에라도 불이 켜져있으면 ‘회사가 여전히 야근을 시킨다’는 외부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영진이 책임자 해임까지 거론할 정도로 불가피한 야근을 제외하면 조직원들의 정시 퇴근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미 중국 회사와 격차가 벌어진다. 노동의 원가 경쟁력에서도 밀리고 양적 근무시간에서도 밀리는 상황이다.

지금은 주당 40시간에서 얼마나 초과됐냐를 따지고 조금이라도 초과되면 ‘야근을 시킨다’고 낙인을 찍는 상황이다. 24시간 무중단 서비스업인 게임은 추가 근무와 야근이 불가피한 산업이다. 

국회의 문제 지적과 정부의 노동강도 조사가 근로 환경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보지만 이것이 ‘초과근무(야근)가 있었는가’에만 매몰돼 극단으로 가면 좋지 않다. 이 같은 시각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일한만큼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고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이 있다면 추가근무의 자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게임업은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순간에 맞춰 제때 나사를 조이는 제조업이 아니다. 창의력이 필요한 콘텐츠 산업이자 디자인과 스토리 등을 다루는 만큼 아티스트의 영역으로도 볼 수 있다. 창의력은 일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나오곤 한다. 위에서 요구하는 야근은 없어져야 하지만, 프로젝트가 문제에 봉착했거나 막바지라면 좀 더 속도를 내고 싶은 조직장과 조직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외부의 시선이 워낙 매섭다보니 더 일하고 싶어도 하루 8시간, 주당 5일 근무로 한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일 잘하는 S급 인재가 많다면 이런 상황도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게임업계에 방준혁, 김정주, 김택진 같은 인재가 올지 의문이다. 정부가 규제 산업으로 낙인을 찍고, 학부모가 게임을 나쁜 것으로 모는데 누가 이 분야에 올 수 있을까. 중국에선 베이징대, 칭화대 등의 인재들이 게임, 인터넷 산업으로 몰리고 있다. 인재 수급만 봐도 한중 기업 간 스피드 경쟁에선 게임이 끝났다고 본다.

◆넷마블, 선제적 시장 대응 ‘내년 NTP서 어떤 평가 받을까’

방 의장은 스피드 경쟁력을 잃은 대신 플랫폼 확장, 자체 IP(지식재산) 육성, AI(인공지능) 게임 개발, 신장르 개척 등 4가지를 앞세워 선제적 시장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같이 출발하면 속도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1,2년 앞서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격하게 보면 플랫폼 확장, 자체 IP 육성은 선제적 대응이 아니다. 이미 경쟁사에서 시도했고 모든 업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AI 게임 개발과 신장르 개척은 선제적 대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두 분야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성과를 낼지는 추후 판단이 필요하다. 방 의장은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6일 열린 4회 NTP는 사실상 ‘방준혁쇼’였다. 11시10분께 시작해 13시30분께 행사가 끝났다. 질의응답이 지속됐고 그러다보니 두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행사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방준혁 매직’이라고 부를만큼 놀라운 성과를 보여왔기에 기자들도 방 의장의 향후 계획과 업계 진단을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는 여느 NTP와 달리 방 의장이 위기감을 털어놓을만큼 사뭇 다른 분위기도 감지됐다. 방 의장은 앱애니 시장조사 결과를 들어 국내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권을 중국산 게임이 점령 중이고 일본, 미국 시장도 중위권부터 중국산 게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황을 짚기도 했다. 

내년 NTP는 어떨까. 최근 중국 기업들의 기세를 봤을 땐 방 의장이 또 다른 위기 언급을 할 수도 있다 본다. 넷마블이 재차 위기를 거론한다면 그때 업계 입장에선 진짜 비상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국내에선 넷마블이 앞서 나가면 후발주자들이 그 길을 따라가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라도 넷마블의 선제적 시장 대응이 성과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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