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

중력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1720년대 남해회사에 투자했다 2만 파운드를 잃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버블이었다. 마치 현재의 암호화폐 광풍과 오버랩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와 분산시스템 기반의 탈중앙화 기술인 블록체인을 둘러싸고 여전히 시장의 관심은 뜨겁다.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세미나나 컨퍼런스장을 가보면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다. 투기 열풍에서 벗어나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구분, 장점만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는 이제 지겨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만을 위한 블록체인은 어둠의 기술로서만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데이터 전문기업인 엔코아가 ‘블록체인, 엔지니어를 위한 올바른 접근전략’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강연자로 참석한 이병욱씨는 전산학을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오랜 기간 몸담아온 블록체인 전문가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탐욕이 삼켜버린 기술’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장밋빛 전망 일색인 기존 책들과는 달리 “암호화폐가 법정통화로 매매되는 한 절대로 독립적인 화폐가 될 수 없다”며 “과학기술만으로 경제 시스템을 바꿀 수 없으며, 잘 설계된 경제시스템이 과학 기술을 활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을 제외한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통제의) 탈중앙화, 분산구조, 데이터 저장과 같은 블록체인 기술의 기본 개념과는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총 매장량이 2100만 비트코인캐시(BTC)인 비트코인은 2033년 12월 5일이면 매장량의 99%가 소진돼 소멸될 것이라는 기정사실화돼 있다.

그의 강연에서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블록체인을 사용해 탈중앙화 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다만 이러한 생태계의 설계가 적절하지 않다면 곧 생태계의 균형은 무너지고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제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 국한된 내용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고 개선점을 분석해 블록체인 구현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화폐 자체가 목적인 블록체인과 범용 블록체인을 구분지어야 한다. 해시함수와 작업증명, 합의규칙 등 기본규칙을 비롯해 생태계 내에서 선의를 가진 다수의 힘이 악의를 가진 다수의 힘보다 항상 크며, 선의의 행동을 하면 악의적 행동을 할 때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설계돼 있어 굳이 악의적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기본 가정, 즉 인센티브 공학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그가 제안한 블록체인 설계 고려사항은 ▲참여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 ▲참여자 역할 ▲탈중앙화 합의 규칙 ▲비가역적 검증 규칙 ▲트랜잭션 정의 ▲유지보수 정책 등 6가지 블록체인 생태계 요소다. 결국 기업에선 블록체인을 왜 도입하고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는 “결국 기업 입장에선 유지보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거나 불변성의 데이터가 필요한 분야, 이 두가지 경우에 블록체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과 같은 탈중앙화 시스템의 가장 큰 단점은 SW의 유지보수가 복잡하다는 점이다. 중앙화된 시스템은 정해진 시각에 일괄적으로 새로운 SW를 교체함으로써 신기능 탑재나 버그 수정이 용이하다.

하지만 탈중앙화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SW를 교체해야 새로운 규칙이 반영되므로 정해진 시간에 일괄적으로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변경되는 기능에 따라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지면 변경에 대한 저항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유지보수정책을 따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에 대한 보상체계와 역할, 탈중앙화 합의 규칙, 비가역적 검증 규칙, 트랜잭션 정의까지 모든 부분이 총망라돼 성격이 결정된다.

또 절대 변하지 않는 데이터의 저장에서도 블록체인의 효용성은 극대화된다. 월마트가 구축한 블록체인 기반의 축산물 이력관리나 중고차 판매 시 마일리지 이력 기록은 블록체인의 효용이 잘 적용된 사례다.

블록체인을 기업 업무 시스템에 적용하기 위한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기업 내  IT실무자의 입장에선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검증 사례가 부족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기술적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오히려 블록체인 도입으로 시스템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비용이 증가할 수도 있다.

기업의 개발자나 엔지니어 입장에서 성공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을 하기 위해선 먼저 자사의 상황에 맞는 블록체인 구현모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첫걸음은 블록체인 기술의 실체와 효용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회사는 물론이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블록체인의 도입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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