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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국민행복 700플랜?…국회도 속고 정부도 속았다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달 중 새로운 지상파UHD 방송정책을 내놓는다. 지난 2015년에 내놓은 정책의 실현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지상파UHD 방송이 세계최초로 시작됐지만 서비스 활성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3년만에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정도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15년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마련한 정책대로라면 올해 시·군 지역에서 UHD 방송을 도입해 내년에는 전국방송을 완료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투자약속을 완화해주는 방향으로 수정된 정책을 준비 중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해 UHD 방송을 15% 편성해야 했지만 단 한 곳도 기준을 맞추지 못했다. 시설투자 이행률 역시 저조하다. 지상파 3사가 방통위에 제출한 2018년 UHD 시설투자 계획은 530억원이었으나 실제 투자는 20%인 106억원에 불과하다. 조금 모자라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집행의지가 없는 수준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약속 불이행의 이유로 경영난을 꼽고 있다. 투자 및 콘텐츠 제작비의 원천인 광고매출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년전 KBS에서 광고가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7%였지만 2019년에는 18.7%로 쪼그라 들었다. 실제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매출은 2011년 이후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전년대비 15.4% 감소한 1조999억원에 머물렀다.

◆ 국민행복 700플랜,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광고매출 감소는 최근 몇 년간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들이 700MHz 주파수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공수표를 남발한 것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3년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부가 700MHz 주파수 40MHz폭을 통신용으로 사용하는 모바일광개토플랜2.0을 발표하자 ‘국민행복 700플랜’으로 대응했다.

계획의 골자는 700MHz 주파수 54Mhz폭(9개 채널)만 지상파에게 준다면 단계를 밟아 2020년 UHD 전국방송을 시작하고 2025년에는 HD 서비스를 종료, 주파수 150MHz를 정부에 반납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행복 700플랜
국민행복 700플랜

당시 SBS의 정책팀 이상진 박사는 “700MHz 주파수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UHD 방송이 안정화 되고 HD 방송 종료시기가 되면 정부와 협력해 채널을 재배치하고 주파수를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논리는 700MHz 주파수를 잠시 빌리겠다는 것이었다. 막대한 투자도 약속했다. 2025년까지 콘텐츠 투자에 7조원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투자비 마련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진 박사는 시설투자비와 관련해 “높아진 직접수신율과 보다 매력적인 UHD 콘텐츠 제공, 모바일 방송 등을 통해 광고증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민행복 700플랜’을 앞세워 방통위와 국회를 적극 공략했다. 결국 지상파+방통위+국회, 통신사+미래부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당시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광개토플랜 정책 결정 당시 여론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700MHz를 통신사에게 모두 몰아주면 미래부는 돈에 눈먼 부처라는 지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유승희 의원도 “주파수 정책은 공공복리 증진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재난망이 1순위라 하더라도 이후 UHD에 배분하고 이후 통신용으로 배분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은 “재난망 할당을 제외한 나머지 대역은 UHD 활성화에 우선 고려하는 것이 공공성 실현에 맞다”고 주장했다.

심학봉 새누리당 의원은 “이통사 입장에서 보면 700MHz가 황금주파수가 아니다”라며 “매력이 떨어지는 주파수를 왜 분배해야 하느냐”며 통신사 입장과 동떨어진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미방위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상당수 의원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요구한 9개 채널에 대해 주파수를 배분할 것을 주장했다.

◆ 700Mhz 주파수의 저주, 부메랑 된 플랫폼 지상주의

국회의 파상공세에 결국 미래부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절충점을 찾아 5개 채널(30MHz폭)을 배분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가 됐다. 2015년 7월 주파수가 분배됐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그해 연말 공동으로 지상파 UHD 방송도입을 위한 정책방안을 마련했다.

1단계로 2017년 수도권부터 본방송을 개시하고 2단계로 광역시권, 3단계로 2020년부터 시군 지역에 순차적으로 도입해 2021년까지 전국 지상파 UHD 방송 도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을 위해 2016년부터 2027년까지 총 6조7902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시설장비 투자 9604억원, 콘텐츠 제작 5조8298억원 투자를 약속했다. 국민행복 700플랜에 비해서는 다소 규모가 줄었지만 상당한 규모의 투자였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약속은 공수표가 됐다. 투자계획 및 편성비율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재원이 없다며 사실상 드러누운 상태다. 3단계 투자를 이행해야 하지만 지역 지상파 방송사들은 3단계 UHD방송 도입을 3년 늦추고 다년간 순차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방송도입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700MHz 주파수를 통해 국민행복을 실현하겠다던 지상파 방송사들의 계획은 일단 좌초됐다. 낮은 지상파 직접수신율, 저렴한 유료방송 요금 등을 감안할 때 지상파 방송사들의 투자가 이행된다 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지상파 UHD 방송을 직접수신할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현재 지상파 방송 직접수신율은 2.6%로 추산되고 있다.

지상파 UHD 콘텐츠의 확장을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유료방송을 통한 재전송이지만 그럴 경우 주파수가 의미없게 된다. 이래저래 세계최초 지상파UHD 방송의 앞날이 험난하기만 하다.


<채수웅 기자> 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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