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은 칼럼

[취재수첩] 비밀의 문 연 애플…‘수리할 권리’ 확장해야

백승은
- 내년 초 미국 도입…국내 출시 일정은 미정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이달 애플은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소비자는 앞으로 부품과 도구를 온라인으로 구매해 직접 애플 기기를 수리할 수 있다. ‘아이폰12’ 및 ‘아이폰13 ’ 시리즈에 먼저 적용하고 이후 맥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애플의 ‘비밀의 문’이 작게나마 열린 셈이다.

기존 애플은 ‘수리권’을 모두 쥐고 있었다. 소비자는 애플의 사후관리서비스(AS)인 ‘애플케어’나 애플이 공식 지정한 서비스 센터에서만 수리를 받아야 했다. 만약 소비자가 공식 업체가 아닌 사설 업체에서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으면 보증 기간이 남았어도 수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문제는 소비자가 사설 업체에서 수리를 받지 않았어도 애플 측에서 ‘무단 개조’로 판단하면 수리를 받을 수 없다. 보험 프로그램인 애플케어플러스에 가입해도 애플이 무단 개조로 판명하면 그동안 지불했던 보험비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공식 센터의 수리값도 비싼 편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상희 부의장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아이폰 액정을 고치는 데 드는 평균 비용은 39만6000원이다. 평균 16만4000원인 삼성전자보다 2배 이상이다.

애플의 수리권 독점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폐쇄적인 수리 정책을 고집한 이유는 ‘그럼에도 잘 팔려서’다. 그렇지만 애플의 수리 정책은 위기에 직면했다. 올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제품 수리 권한을 통제하는 독점적인 관행을 시정하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역시 수리 제한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제재하겠다고 언급했다.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건 한계가 있다. 전자기기에 대해 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분리하고 부품을 교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설 수리업체에서 수리를 받을 수 없는 정책도 여전하다. 다만 수리권을 모조리 붙들고 있던 애플이 한 발짝 물러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든 아이폰 사용자 거주지 주변에 애플이 공인한 서비스 센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공식 서비스 센터는 단 한 곳이다.

급하게 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멀리 있는 공인 서비스 센터를 찾아가야 하는 건 불합리하다. 셀프뿐만 아니라 모든 사설업체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수리권을 확장해야 한다.

내년 초 미국에서 처음 셀프 서비스 수리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이다. 국내 일정은 미정이다.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이 제도가 도입돼 좀 더 많은 소비자가 편하게 수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백승은
bse1123@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