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신제인 기자] 수년전, 화가로도 이름을 꽤 날린 국내 유명 가수가 사기죄로 고소돼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가 그렸다는 작품중 200점 이상이 사실은 다른 무명 화가가 그린 것이고, 본인은 그림에 사인만 표시하는 수준이었다는 이른바 '대작'(代作) 논란이었다.
물론 해당 가수는 '자신의 지시대로 그림이 그려졌기때문에 본인 작품이 맞다'는 주장을 했다. 예술의 창의력 영역에 있어 자신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법원(3심)까지 가는 법정공방끝에 해당 가수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해당 작품이 그 가수의 고유한 아이디어였고, 대작 화가는 기술보조의 역할이었으며, 그림 구매자들은 구입 동기로 ‘아이디어의 참신함’ ‘화가의 이름값’ ‘소장가치’ 등을 진술했다는 점을 참작 사유로 들었다. 또 미술사적으로도 '도제'와 같이 조수가 제작을 보조하는 방식이 관행이란 점도 고려했다.
◆AI의 발달과 인간 창의력의 영역…미묘해진 경계
일반의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앞에서 예시한 사례처럼, '창작의 고통'을 거쳐 나온 결과물을 인간 고유의 생산물로 인정해 주고, 법적으로도 보호해주자는 주장에는 사실 큰 이견이 없다. '저작권'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과 '작업을 대행해주는 AI 로봇'의 역할 경계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단순 보조' 역할을 해야 할 AI로봇의 능력이, 결과적으로 너무 뛰어나기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1차적인 문제는 결과적으로 '인간 능력의 과대 포장'이다.
즉, 인간의 1차적 창의력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결과물들을 AI로봇이 산출하게되면, 그 공로와 경제적 가치를 온전히 인간에게만 부여하는 것에 대한 문제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AI로봇의 능력차로 인간의 능력이 결정됨으로써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적인 문제는 AI로봇을 활용하지 않는 순수 창작자들이 받게될 상대적 불이익이다.
즉, AI로봇을 활용해 고품질의 결과물을 대량 생산하는 사람과 비교해, 순수 창작물을 오롯히 개인적 노력으로 생산해내는 작업자들이 크게 불리해진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논리다.
결국 AI로봇을 통해, 복제하듯 쉽게 생산해내는 창작물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는 결코 예술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AI 로봇을 활용해 대량 생산과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다양한 형태의 기업에 대해 국가는 차별화된 세금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아직은 좀 먼 얘기지만 '사람의 노동력'과 'AI의 노동력'을 구분해, 경제적 가치를 따로 매기려는 시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은 명령만, 작업은 AI가 수행… 누가 작업한건가?
세계적인 디지털 콘텐츠 공유 플랫폼 게티이미지스는 최근 자사 플랫폼에서는 “AI가 그린 그림의 업로드 및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AI 그림의 저작권이 모호하다’는 것이 이같은 결정의 이유다.
관련하여 기술전문매체인 '더 버지'에 따르면, 게티이미지스 CEO 크레이그 피터스는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합법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에서 ‘문자-이미지’ 변환 AI툴이 주목받고 있다.
원하는 그림을 설명하면, 인공지능(AI)이 그에 걸맞는 여러가지 버전의 일러스트 이미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툴로는 ‘DALL-E’, ‘미드 저니(Midjourney)’, ‘스테이블 디뷰전(Stable Diffusion)’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틱톡에서도 간단하지만 유사한 서비스를 일반에 공개했다.
실제로 아직까지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이 AI 개발자에 있는지, 해당 이미지를 주문한 사용자에 있는지, 또는 AI가 저작권을 지닐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돼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기존 예술계에서도 저작권의 몫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해졌다. AI의 훈련에 사용되는 이미지들은 개인 블로그, 뉴스 사이트 등 웹 상에서 긁어낸 이미지라는 이유다.
물론 이같은 논란에 AI 이미지 생성기 제작자들은 ‘문제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스크래핑(데이터를 추출하는 행위)’은 미국에서 합법적이며, 소프트웨어(SW) 제작에 있어서는 ‘공정 사용’ 원칙을 적용받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공정 사용’은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에서만 인정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게티이미지스와 같이 유료 이미지를 다루는 플랫폼들은 저작권 문제에 보다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아예 AI가 그린 그림을 그림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게티이미지스의 최대 경쟁사 중 하나인 셔터스톡도 아직 해당 콘텐츠를 금지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는 않고있지만, 우선 AI 콘텐츠에 대한 일부 검색을 제한하는 등 AI에 의한 창작물은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인간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AI 그림을 아예 금지한 사례도 있다.
소셜 아트 사이트인 'Fur Affinity'측은 “AI는 머신러닝 단계에서 다른 아티스트의 수백, 수천 개의 작품을 참조해 콘텐츠를 만든다”며 “예술가와 그들의 콘텐츠를 지원하는 것이 우리 목표이기 때문에 AI 생성 콘텐츠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사이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I가 기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 작가를 대체하면서 예술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예술계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 AI 제작 콘텐츠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