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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무임승차방지법 꼭 필요해?”…호주 ‘뉴스미디어협상법’ 사례 보니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글로벌 빅테크의 망 투자 분담을 골자로 하는 법안 제정이 최근 유럽에서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사적 개입이라는 이유로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당사자간 협상을 우선해야 한다며 법제화에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글로벌 영향력이 큰 빅테크들의 협상력 우위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빅테크에 법적 의무를 부과해 자율적인 협상 의지를 이끌어낸 사례도 발견된다. 지난해 2월 제정된 호주의 ‘뉴스미디어협상법’이 그 예다.

◆ 호주 뉴스미디어협상법이 가지는 의미

뉴스미디어협상법은 호주의 ‘미디어와 디지털플랫폼 의무 협상 규정’(News Media and Digital Platforms Mandatory Bargaining Code)을 이르는 것으로, 디지털플랫폼과 뉴스제공자가 사용료 협상을 벌이도록 촉진하는 법이다. 특히 협상에 실패하면 구속력이 있는 조정절차를 밟도록 강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2019년 호주 정부는 자국 미디어 기업이 구글과 페이스북(현 메타) 등 디지털플랫폼으로부터 정당한 뉴스 콘텐츠 사용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약이 필요하다고 보고, 기업들에 약 1년의 시한을 주면서 규약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호주 정부는 그러나 이후에도 규약 마련에 진전이 없다고 판단, 2020년 4월 뉴스 콘텐츠에 대한 디지털플랫폼의 공정한 대가 지불을 강제하는 법안 마련 계획을 발표한다. 이어 같은해 7월에는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 주도로 법안 초안까지 완성하게 된다.

이는 정부가 자국 미디어 기업과 디지털플랫폼간 협상력에 불균형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당사자간 자발적 협의 및 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법적 구속력을 가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로드 심스 ACCC 위원장은 “뉴스 사업자는 콘텐츠에 대한 지불을 협상할 능력이 거의 없다”며 “우리는 협상력 불균형을 해결하고 콘텐츠에 대한 공정한 지불이 이뤄지길 원한다”고 법제화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법안 통과 이후, 빅테크들이 자발적으로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즈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호주 언론사와 빅테크 간 자발적 협상에 따른 거래는 30건 이상 발생했다. 같은해 5월에는 구글과 유럽연합(EU) 언론사 300여곳이 뉴스 사용료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 입법 이후 EU 차원에서 ‘뉴스사용료 부과법’ 제정 움직임이 일어난 탓에,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응하게 된 것이다.

◆ 망 이용대가도 결국 ‘힘의 불균형’ 문제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는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핵심도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국내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간 협상력 불균형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사례가 그렇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수차례의 망 이용대가 협상 요청에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SK브로드밴드는 기간통신사업자로서 가진 이용자 보호 책무로 인해 넷플릭스와 망을 연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일단 망을 연결한 후 협상은 나중에 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 과정에서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요청한 재정 절차마저 패싱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당시 재정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SK브로드밴드에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결국 방통위의 재정 절차는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호주 뉴스사용료협상법 제정을 전후로 구글·페이스북이 호주 미디어 기업들과 자발적 협상에 응하는 등 태도가 변한 것을 생각하면, ‘망무임승차방지법’ 또한 글로벌 CP의 태도 변화로 이어져 자발적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다소 보수적인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2월 범부처 ‘디지털 플랫폼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ISP와 CP간 망 이용대가 문제는 네트워크 이용에 대한 비용부담을 원칙으로 하되 비용부담 수준과 내용에 관해서는 ‘계약당사자간 협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평가했다.

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호주 뉴스미디어협상법의 경우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ACCC의 정책 의지가 강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망 이용대가 문제 또한 ISP나 CP 중 누가 정의고 부정의인지 문제라기보다는, 그 나라의 규제기관이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했는지가 결국 중요한 거라고 보여진다”고 진단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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