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인텔 R&D센터를 떠나보내며…

채수웅기자
5일 인텔의 한국내 R&D센터 철수가 결국 공식화됐다. 지난 2005년 3월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시 인텔 본사에서 이 회사의 낸시 팔민티어(Nanci Palmintere) 국제담당 사장과 R&D센터를 설립을 위한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지 2년여만의 일이다. 인텔측은 이번 철수 발표가 실적악화에 따른 본사 차원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입장을 밝혔다. “불과 30~40명의 직원들에 의해 운영돼왔던 R&D센터 철수 소식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따질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물론 ‘R&D센터’는 말 그대로 연구개발을 위해 만든 연구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글로벌 IT업체들이 국내에서 발표한 R&D센터 설립 발표는 그 자체로 ‘IT코리아’의 위상을 측면에서 떠받쳐주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인텔의 R&D센터 경우 정통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유치한 첫 사례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결과적으로 이번 인텔의 사례는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동북아 IT(정보기술) 허브 정책에도 상처를 준 셈이 됐다. 그동안 R&D센터 설립 소식을 들으면서 국내의 많은 IT인들은 “글로벌 IT기업들이 여전히 한국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자신감과 함께 위안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텔의 경우에서 보듯이 이 회사의 R&D센터는 ETRI와 무선통신, 디지털홈 등의 기술개발에 협력해왔지만 이번 일로 그 동안 진행해온 연구도 포기하는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인텔은 R&D센터 철수와는 별도로 울트라모바일PC의 경우 오히려 지원조직을 신설키로 해 ‘이익’에만 부합한다면 정책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인텔의 R&D 센터 철수를 계기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IT 허브 육성 전략도 유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센터를 개소한 기업과 국내 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부가 지금까지 유치한 글로벌 IT기업들의 R&D센터는 인텔을 포함해 IBM, HP, 모토롤라, 썬, SAP, 오라클 등 15개이다. 정통부가 소위 유치했다고 하는 이들 유명 글로벌기업의 R&D센터의 경우 다양한 연구개발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일부는 R&D센터로서의 당초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곳도 있다. 또한, 이들 기업 중에는 정부의 유치 노력과는 상관없이 기업의 필요성에 따라 R&D센터를 설립한 곳들도 있다.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시장의 가치를 높이보고 투자를 한 셈이지만 마치 중국이나 일본에 설립할 연구센터를 마치 정부의 유치 노력으로 한국에 설립한 양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다. 이번 인텔의 R&D센터 철수 발표가 씁쓸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그동안 R&D센터 설립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했던 우리 스스로의 ‘경박함’이다. 그동안 글로벌 IT R&D센터가 기업 차원에서 실제 투자는 하지 않고 단순히 건물 임대와 기본 연구 인력들의 재배치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그저 세계 유명 IT기업이 국내에 연구센터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흥분하고 우쭐했던 것 말이다. 글로벌 IT기업들의 R&D센터가 한국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만으로는 R&D세계화를 실현할 수는 없다. 센터와 유치국가 사이에 공동연구와 지식교류 등의 활발한 상호작용이 있어야 해당 기업이 본국에서 습득하기 어려운 기술을 받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도 그 기업이 보유한 최신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및 인력양성의 선순환도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매년 국내에 R&D센터 터를 잡는 기업들의 숫자가 늘어나는데 흥분할 것이 아니라 설마 했던 IT산업마저도 거품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인식에 이제 익숙해야 한다. 기업 생리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R&D센터 뿐 아니라 아예 지사나 법인까지도 언제든지 철수할 수 있는 냉엄한 시장 논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어떻게 해야 글로벌 IT기업들과 우리 IT산업이 서로 만족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채수웅 기자> 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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