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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공공기관 망분리 사업의 아이러니

김재철
도둑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집 주위에 새로 담을 하나 더 쌓는 데 100이라는 비용이 든다고 치자.

반면 대문·현관문·창문 등 집안의 여러 문들에 시건장치를 강화하고 경비 전문업체가 수시로 순찰을 도는 서비스를 하는데 30이나 50의 비용이 든다면 당신은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가?

물론 반드시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을 선택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집 주인이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들은 제쳐 둔 채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작업도 번거로운 방식, 즉 새로 담을 한번 더 둘러치는 방식만을 제시한다면 이는 합리적인 선택을 일부러 가로막는 것이나 진 배 없을 것이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이 추진중인‘공공기관 망 분리 사업’이 이와 유사한 형국이다. 당연히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사업은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정보 유출을 막고 해킹 등의 공격으로부터 보안을 더욱 강화하고자 인터넷 망과 업무용 망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최근 이 사업의 RFP(제안요청서)를 내면서 별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인터넷과 업무용 망을 분리하는 방식만을 제안했다. 해당 기관의 공무원들은 두 대의 PC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사용해야 한다.

이에 서버기반컴퓨팅(SBC) 전문업체들은 “특정 방식이 처음부터 배제됐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SBC 기술을 이용하면 별도 망을 구축하지 않고도 논리적으로 망을 분리해 인터넷 사용은 가상공간에서 하고, 내부 업무는 실제 네트워크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해킹 등의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RFP는 이 SBC 방식을 배제한 채 별도 망을 새로 구축하는 방식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물리적으로 별도의 망을 구성하는 방식을 선호할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 방식을 아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특히 별도의 망을 구성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두 대의 PC를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일하는 당사자들이 번거로워지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특정 업체들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특정 방식을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몇몇 기관에서만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이번 사업을 수주할 경우 향후 계속 추진될 공공기관 망 분리 사업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제안설명회 하루 전에 긴급 입찰공고를 냈으며, RFP의 일부 스펙이 특정업체에 전적으로 유리하게 잡혀 있다는 등 논란이 적지 않다.

정부 측은 “데이터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별도의 망을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여러 방식을 놓고 안전성을 철저하게 검증해보면 될 일이다.

정부가 예산 절감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추진하는 사업이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배제했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일부 업체들이 지나치게 의혹을 조장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그런 식의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까지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사업이 추진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예산을 투입해놓고도 책상 위에 두 대의 PC를 놓고 불편하게 일하게 될 공무원들의 모습이‘IT강국 코리아’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김재철 기자>mykoreaon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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