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우리나라엔 왜 할아버지 개발자가 없을까?

심재석 기자
IT산업의 주인공은 개발자다. 현재 전세계를 호령하는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의 창업자들은 모두 개발자 출신이며, 개발자의 힘으로 현재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현재 이 회사들에 가장 중요한 자산도 개발자들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IT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개발자다. 개발자의 창의력과 기술력이 IT산업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국내 개발자들은 주인공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발자들의 노동강도는 세고, 그에 비해 처우는 좋지 않다는 비판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결국 IT개발자를 지원하는 청년들이 줄어들었고, 이는 IT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왔다.

이런 현실에서 개발자들은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없었다. 미디어는 극단적인 목소리만 담아왔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국내 리치인터넷애플리케이션(RIA) 대표업체 투비소프트와 함께 국내 개발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개발자들의 희노애락을 개발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연재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투비소프트 교육사업팀 김지영 팀장이 전한다. [편집자 주]


[개발자 스토리] ① 60세 개발자를 꿈꾸며

필자가 90년대 후반 외국계기업에 파견 나갔을 때의 일이다. 본사에서 개발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한국에 보내왔는데, 그야말로 머리가 하얀 백발의 할아버지가 우리 앞에 나타났었다.

그때 저 나이에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 때 그 외국계 기업의 개발자 같은 할아버지 개발자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개발자들이 나이가 들면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 때문일까?

보통 한 조직에 속해 있는 우리나라의 개발자들은 30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시작으로 점점 관리자급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프로젝트에 직접 투입돼 실질적인 개발 작업에 투입되기 보다는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더욱 요구받게 된다. 마치 개발은 좀 더 젊은 사람이, 관리는 좀 더 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는 것처럼.

경력 개발자는 관리자?


프로젝트 오픈을 앞둔 국내 개발자들 사이에서 흔히 농담처럼 오고 가는 말이 있다.

‘월화수목금금금’

야근과 주말 출근이 필수 코스처럼 찾아오면서 생겨난 말이다. 주말에 자고 있던 어린 아들이 깨서 아버지 얼굴을 보고 놀라 울더라는 일화도 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속한 분야에서 차곡차곡 개발 능력을 쌓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여 승진하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발 현장에서 멀어지거나, 직접적인 개발 업무에서 벗어나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지휘하는 관리자로 변모하게 된다.

개발경력과 관리자의 역할 수행 사이에는 반드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오래된 경력의 개발자들은 관리 능력을 우선적으로 요구받게 된다. 결국 개발자들은 경력이 쌓일수록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갖추는 일에 전념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자들의 오랜 개발 노하우와 경력은 존중받으며 전수되기보다는 그대로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기 때문에 그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3년에 한 번씩 초급으로 떨어지네”

우리나라에서 나이 많은 개발자를 찾아보기 힘든 또 다른 이유로, 새로운 기술 등장에 따른 개발자 환경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개발자가 어느 날 “나는 기술력이 있는 것일까?”라고 물으며 고민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국내 IT 분야에서 개발자로서의 능력 한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료의 모습을 보며 필자 역시 그날 많은 생각을 했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IT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있으며, 마치 사회는 그 새로운 기술들을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개발자들이 새로운 IT기술의 속도 경쟁에 발맞춰 늘 그것들을 익히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리게 하거나, 개발자들도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명목 아래에 각각의 전문 분야 외에도 다른 분야의 공부까지 해야 하는 상황들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일부 개발자들은 개별적인 능력을 벗어나는 다양한 기술 요구의 부작용으로 인해 그들 경력에 비해 부족한 기술력을 갖게 되거나 아예 해당 분야에서 도태돼 버리는 일도 생기게 된다.

외국 같은 경우에는 아직도 코볼(Cobol)만 전문으로 하는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한 분야의 기술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그 분야의 구루(Guru)로서 존경을 받고 있는 해외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전문 코볼 개발자가 몇 명이나 존재할까. 예전에 함께 일했던 개발자가 “이 계통에 10년만 있으면 전문가가 될 줄 알았는데 3년에 한번씩 초급으로 떨어지네” 라며 씁쓸하게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필자는 현재 필자가 소속돼 있는 기업에서 개발자들 대상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를 하다 보면 예전보다는 확실히 나이가 많은 개발자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지긴 했다. 그러나 40대의 개발자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개발 현장에서 힘찬 심장 박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할아버지 개발자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이 땅의 개발자로서 바란다.

<투비소프트 교육사업팀 김지영>

심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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