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IT업계도 곱씹어봐야 할 ‘反 월가 시위’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요즘 지구촌의 관심사는 약 한달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반(反)월가 시위’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시위는 다름 아닌 수십년간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해왔던 심장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다.
복합파생상품과 같은 최첨단 금융기법이 넘쳐나고 합리성으로 무장된 것으로 알았던 뉴욕의 월 스트리트가 사실은 '샤일록'과 같은 탐욕스러운 금융가들로 넘쳐나는 투기장이었고, 언제부터인가 '금융'이란 괴물이 '실물 경제'까지 왜곡시키는 상황이 됐다.
반 월가 시위는 급기야 지난 15일에는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서울에서도 여의도를 비롯한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물론 '반 월가' 시위가 국내에선 이렇다할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큰 충돌도 없었다.
무엇보다 '10.26 서울 시장 보궐선거'라는 워낙 큰 이벤트가 연일 지면에 경마식 보도로 생중계되고 있기때문에 대부분의 언론은 맹숭 맹숭한 재료를 거뜰떠 보지도 않는 듯 하다.
더구나 시위의 내용 자체도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에 대한 규탄, 빈부격차 해소 요구 등 우리 정서에서 봤을때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뜬구름 잡는 것들이다. 이것 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들에 수년간 길들여진 국민들에겐 당연히 관심밖이다.
그러나 이 시위가 가진 역사적 의미가 너무 소홀하게 다뤄졌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도 시위가 가지 의미에 대해 직접 코멘트 할 정도의 사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근 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 '혁신'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 냈고, 그리고 소프트웨어(SW)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과는 대조적이다.
IT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극소수의 IT전문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반 윌가 시위'는 IT와는 관계없는 금융산업만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그중에는 '반 월가 시위'가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위력을 보여준 사례라며 본질에 대한 고찰보다는 보다는 'SNS의 칭송'에만 과도하게 열을 올리는 호들갑도 적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반 월가 시위'는 금융산업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그 속성을 들여다보면 우리 나라의 금융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란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하다.
외신들은 대체로 '반 월가 시위'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어쩌면 통제를 자유자재로 벗어나버린 탐욕스런 금융자본가들, 빈부격차가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시장시스템의 구조적인 왜곡에서 비롯됐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1%대 99%의 극단적인 경제적 사회적 불평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만약 여기서 '금융산업'을 우리 나라의 'IT산업'으로 바꾼다고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문구다.
IT산업을 지탱하는 시장의 룰은 과연 공정한가?
IT시장의 생태계는 이미 지나치게 왜곡되지 않았나?
현재 IT대기업와 중소기업간의 관계가 과연 진실로 '공생'을 위한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나?
IT업계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나 하나 둘씩 이같이 자조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소프트웨어(SW)가 새로운 이슈가 되자 한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SW분야에 비전이 있습니까?'
답글은 약 8대2 정도로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심지어 '공부를 잘한다면 의대를 가든지 로스쿨로 가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중 실제로 IT업계에 종사하는 듯한 사람이 올린 답변은 꽤나 씁쓸하다.
'IT수요가 많다고 하지만 대기업으로 가는 경우는 아마 전체의 1~2%에 불과할 것이다. 대부분 '갑 을 병 정'으로 이뤄지는 수직적 하청구조에 끝단에서 고생할 것이다. IT대기업이 SI(시스템통합)프로젝트 를 수주해오면 그 회사와 또 하청, 재하청 관계에 있는 수많은 업체들이 관계하게 되는 구조다. 그런데 문제는 IT대기업이 덤핑으로 사업을 수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보니 결국 하청업체는 먹고 숨쉴 정도로 근근히 연명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시장 구조가 낙후됐다. '
물론 이것은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얼마나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과거보다는 IT시장의 주변여건이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대기업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SW인력을 필기시험없이 채용하겠다는 '파격'을 밝혔다.LG전자도 SW인력을 중시하는 획기적인 전략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반 월가 시위'가 산업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투명한 경영, 공정한 경쟁, 공존과 공생,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헌신, 건전한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한 재고찰이다.
이 같은 가치는 IT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할 것들이다. '반 월가 시위'를 우리 IT산업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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