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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과대포장된 애플 효과?

한주엽 기자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작년 이맘때쯤 국내 액정표시장치(LCD) 대기업의 영업 조직에선 한 바탕 난리가 났다. 애플이 제시한 수요 예측치는 수백만 대 수준이었지만 정작 구입해간 물량은 수십만 대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본의 아니게 쌓인 재고로 발을 동동 굴렀다. 애플 제품에 맞춰 생산한 것이라 시장에 밀어낼 수도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 관계자는 “애플이 큰손이니 딱히 방법이 없다”며 “그래도 애플이 보전(?)은 해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애플은 정말 수요 예측을 못하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 이런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애플과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애플이 한 달에 두 번씩 가격을 깎아 대서 팔아도 남는 것의 별로 없다”고도 했다.


지난 26일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발표 IR 현장에선 한 애널리스트가 “국내 부품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애플에 끌려 다니는 건 문제가 있다”고 감정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는 국내 여러 업체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애플이 부품 가격을 깎기 위해 분기 초 과다한 예측치를 제시한 뒤 실제로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물량만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분기 말 실적 집계 시즌이 돌아오면 재고를 보전해주겠다며 추가 할인이 적용된 네고(Nego)가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부품 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싼 값에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 애널리스트의 설명이다.


어쩌다 애플이 낸 발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면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조용한 불호령(?)이 떨어진단다. 노예 계약도 이렇게 더러운 노예 계약은 없을 것이다. 최근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은 삼성전자 아니면 애플인데 딱히 벗어날 방법도 없으니 답답하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가트너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애플은 세계 유수의 업체들 가운데 공급망관리(SCM) 역량 1위 기업으로 랭크돼 있다. 5년 연속 1위다.


가트너는 전문가 의견(50%), 재고회전율(15%), 최근3년간총자산이익률(25%), 매출성장률(10%)을 근거로 SCM 역량 순위를 매기는데 애플은 전반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고, 전문가 의견 점수가 특히 높게 나왔다.


그러나 가트너의 SCM 조사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평가 항목이 들어갔다면 애플이 이처럼 1위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애플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 말고도 2~3곳은 더 생기면 좋겠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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