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록 칼럼

[취재수첩] KAIST 신임총장 취임사, 단 한번도 언급안된 ‘서남표’

박기록 기자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강성모 KAIST 총장이 27일 취임식 가졌다. KAIST 총장으로서 첫 일정이다. 이날 KAIST 홍보팀은 국내 언론사들에게 첨부자료로 A4지 7장 분량의 긴 취임사를 보냈다.

첫 출발을 맞이한 당찬 각오와 함께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언급해야하는 인사들의 명단이 빼놓지 않고 빼곡하게 열거됐다.

오명 KAIST 이사장을 비롯해 정길생,·표삼수·곽재원(이사회 이사), 최순달·홍창선(전임 총장), 이용경(전 국회의원), 강대임(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장), 최영명 (한국원자력통제 기술원장), 이효숙(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김영준(광주과학기술원장),이은우(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수영(KAIST발전재단 이사장) 등이다. 호방함보다는 조용하고 꼼꼼한 강 신임 총장의 학자적 세심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름들중에서 한사람의 이름이 빠진것이 유독 눈에 띤다. 서남표 전 총장의 이름이다.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인사들의 이름만 나열했기 때문에 서 전 총장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취임사에서 전임 총장에 대해 한 줄이라도 언급됐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보니 취임사에는 서 전 총장이 재임시절 즐겨썼던‘혁신’또는 ‘개혁’이란 단어도 없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분명한 것은 서남표 전 총장도 KAIST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역사라는 점이다.


앞서 서 전 총장은 지난 22일, 그가 원했던 KAIST 졸업식을 치르고 7년만에 학교를 떠났다. 자신 사퇴의 형식을 갖췄지만 사실상 불명예 퇴진이다.


서 전 총장은 재임기간 동안 오명 KAIST 이사장과 불편한 관계가 이어졌다. 지난 1~2년간 볼썽사나운 기자회견 공방이 수차례 오갔다. 세속의 이해집단과는 분명히 다른 청정지역일 줄 알았던 KAIST가 실제로는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진흙탕이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특허 도용 의혹 등 정신차리지 않고 들으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내용의 고소 고발전이 난무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올해 입시에서 KAIST 지원율은 역사상 가장 낮은 84%를 기록했다.

누구의 책임을 떠나 여전히 KAIST는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KAIST 내부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나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KAIST에겐 '혁신'과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요즘 '박정희 시대'의 흑백필름이 자주 TV에 등장한다. 어쩌면 서 전 총장처럼 그 시대를 힘겼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KAIST의 개혁'은 어렵지 않은 과제였는지 모른다.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되고 교수는 더 연구에 충실하면 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지금보다 훨씬 더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미국에 유학온 청년이 겪었을 모진 설움,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 KAIST 내부의 반발은 학교를 떠난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배부른 투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일각에서는 '서남표식 개혁'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한다. 하지만 이는 공허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KAIST의 혁신은 계속돼야 하기때문이다.

서남표식의 개혁이 비록 타깃을 명중시키지 못했다하더라도 또 다시 누군가는 용기를 내 개혁의 방아쇠를 당겨야한다.

얼마전 KAIST는 세계 대학 랭킹순위를 63위로 끌어올렸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Made in Korea'제품 중에서 세계 60위권박에 쳐져있는 제품은 글로벌 시장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야속하지만 그게 눈높이가 높아진 일반인이 느끼는 기준이다.


불편하더라도 KAIST가 '서남표'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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