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서는 사자가 온라인 상에 남긴 기록, 콘텐츠를 처리할 명확한 근거가 없어 유족의 뜻에 따라 전량 삭제하거나, 전체공개 게시물에 한해 열람을 허락하고 있다.
그러나 사자가 남긴 디지털 유산도 상속법에 의거 상속될 수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이와 관련된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 주최로 ‘고인의 디지털 유산 관리와 입법방향’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서는 상속가능한 디지털 유산의 범위, 개인정보보법과 정보통신망법과의 충돌,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할 시 해당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사진>는 “법적인 측면에서 디지털 유산이란 ‘사망 시 보유하고 있던 모든 디지털 형태의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이와 같이 정의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디지털 유산에 해당되는지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유산이라고 하면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재산상의 권리와 의무를 뜻한다. 사용자가 생전에 올린 콘텐츠(동영상, 이미지, 게시물, 댓글 등)를 비롯해 게임머니, 가상화폐 등 전자적 형태의 유가증권도 디지털 유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유산을 저작권법, 콘텐츠산업진흥법 등 법조문과 대조해 문제가 없다면 실제 상속이 가능하다.
최 교수는 대부분의 디지털 유산은 상속이 가능하겠지만 ‘온라인 계정’은 개인정보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정은 계약에 따라 당사자에게 인정되는 채권적 권리이지만, 해당 계정에는 재산적 가치 외에도 비재산적, 인격적 가치가 포함된 정보도 혼재돼 있다. 이러한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법을 근거로 상속이 불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만 해석하면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의 적용 대상은 ‘살아있는 개인’이다. 사자의 경우 해당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007년 ‘사자’도 포함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7.06.14., 선고 2007도2162)
최 교수는 “대법원의 판시를 기초로 이메일과 같은 비공개정보를 상속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에 위배되지만, 민법에 따라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행위는 법률에 의한 행위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유산 상속 관련해 대상의 제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경환 민후 변호사<사진>는 “디지털 유산이 상속되는 것은 필요하나 제한해야할 요소도 있다. 계정(인격이 혼일), 저작권법·상법 등에 의한 제한, 국가·기업 기밀정보, 사자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정을 디지털 유산에 포함시켜 상속할 경우 사자의 개인정보를 타인이 그대로 승계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인격혼일의 문제로 이어지며, 자칫하다간 거래안전을 해치거나 범죄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법령상의 제한을 잘 따져봐야한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그는 “국가나 회사의 기밀정보는 상속인에게 공개돼서는 안되고, 국가나 회사에 귀속돼야 한다. 또 불법정보 등은 상속치말고 삭제돼야 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절차는 인터넷서비스업체(포털 등)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구체적 실현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종합토론에서도 큰 주제는 바뀌지 않았다.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고,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속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나왔다.
상속되지 않은 디지털 유산의 처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과학방송통신팀장은 “재산으로서의 디지털 유산의 상속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는 지워지지 않은채 온라인 상에 남겨진 사자의 디지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편 이와 같은 논의는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제기돼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제안됐으나, 시일을 넘겨 결국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