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팬택 위기, 누구의 잘못인가
- 채권단·통신사·정부, 팬택 회생 기회 줘야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It's different.(이건 달라)’ 기억나는가.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가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스카이 휴대폰을 사고 싶었거나 샀을 가능성이 높다. 한때 스카이의 흰색폰은 남과 다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었다. 검은색 또는 회색 일색이던 일반폰에 흰색 바람을 불러온 것이 스카이다. 참신한 디자인은 스카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다.
2009년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왔다. 지금은 세계 1위 삼성전자가 내놓은 대항마는 ‘옴니아2’다. 제품력은 비교도 안됐다. 아이폰과 옴니아라니. 홈그라운드 이점과 마케팅으로 버텼다. LG전자는 이마저도 못했다. 실질적 국내 첫 스마트폰 즉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갖춘 ‘시리우스’는 2010년 4월 나왔다. 시리우스는 스카이의 첫 스마트폰이었다. 시리우스를 계승한 ‘베가’까지. ▲끊김없는 금속 테두리 ▲지문인식 등 베가의 강점은 기술력과 새로운 시도다.
스카이와 베가를 만들어 온 팬택이 백척간두다.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연장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채권단은 통신사에, 통신사는 채권단에 책임을 돌린다. 정부는 손을 놨다.
팬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채권단을 파트너라고 여겼던 것, 통신사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었던 것, 정부가 권한대로 출고가를 낮췄던 것이 팬택의 잘못이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상대방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다니 잘못도 이만저만 큰 잘못이 아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에 맞서 휴대폰만 전념한 것도 실책이다. 이들이 쏟아 붓는 마케팅비를 따라 잡을 생각을 했어야지 제품 경쟁력 강화에 돈을 쓴 것도 문제다.
채권단은 신규 투자 없이 기존 투자금 회수만 궁리했다. 자신들은 담보가 없는 채권만 출자전환을 하면서 남에게 돈을 내라 한다. 누가 따르겠는가. 통신사는 팬택 제품을 사준 것을 가지고 생색을 냈다. 보조금을 팬택이 내지 않으면 제품은 창고로 직행이다. 보조금으로 쓸 돈을 팬택 생존에 보태기는 아깝다. 정부는 이중적이다. 시장에는 3개 회사가 경쟁해야 한다며 3위 통신사 LG유플러스를 살리려 유효경쟁정책을 펼친 것이 엊그제인데 휴대폰 제조사 3위 팬택에겐 인색하다. 실적 반등 조짐을 보이던 팬택을 다시 주저앉힌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통신사 사업정지다.
물론 팬택이 어려움에 빠진 것은 세계 휴대폰 시장 재편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기회까지 주지 않는 것은 너무하다. 채권단 통신사 정부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삼자가 머리를 맞댈 때다. 팬택과 협력사 직원은 모두 8만명이다. 팬택이 대기업 계열사였어도 이렇게 나왔을까.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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