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

한국판 저작권 괴물 막은 IT전문 법무법인 ‘민후’

심재석

출처 : 법무법인 민후 페이스북 페이지
출처 : 법무법인 민후 페이스북 페이지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저작권 괴물, 특허 괴물이라는 말이 있다. 저작권이나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하지 않고 보상금만 노리는 회사를 이렇게 표현한다.저작권 괴물, 특허 괴물은 주로 권리자에게 우호적인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데 최근에는 국내에도 저작권 괴물, 특허괴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픈캡처가 대표적이다. 오픈캡처는 지난 2003년 개발된 무료 프로그램으로, 사용자가 50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문제는 오픈캡처가 지난 2012년 엣지소프트라는 회사에 인수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인수된 이후 국내에서 아이에스디케이(ISDK)라는 회사가 오픈캡쳐를 판매 중인데, 그 모습이 저작권 괴물의 모습과 유사했다.

아이에스디케이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던 오픈캡쳐의 라이선스를 유료(기업)로 바꾸고, 44만90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캡쳐 프로그램의 10배 정도 되는 가격이다.

비상식적인 가격책정은 이 회사가 제품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할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아이에스디케이는 오픈캡쳐를 인수한 이후 기업, 공공기관, 학교, 병원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합의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 저작권 괴물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고법 민사4부(이균용 부장판사)는 지난 달 20일 메리츠화재와 벽산엔지니어링 등 166개 기업이 컴퓨터 화면캡쳐 프로그램인 '오픈캡쳐' 저작권사 ISDK를 상대로 낸 '저작권으로 인한 채무부존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오픈캡처 저작권 침해 주장에 시달리던 기업과 기관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했는데, 고등법원에서 이 기업들이 오픈캡처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 낸 것은 ‘법무법인 민후’다. 민후는 국내에서 드물게 IT전문 법무법인(이하 로펌)을 표방하며 저작권 및 특허 분쟁, 보안 등을 주로 다루고 있는 로펌이다. IT분야만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IT분야에 특히 강점이 있다. 10명의 소속 변호사들이 법률뿐 아니라 기술까지 이해하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민후 외에도 IT분야에 전문성 가진 로펌도 있고, 대형 로펌에 IT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기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저작권, 정보보호 등 한 분야에 집중한다. IT전반에 전문성을 보이는 로펌은 드물다.

이번 오픈캡처 소송은 민후의 기획이었다. 오픈캡처 저작권 괴물로 인한 피해기업이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공익소송의 개념으로 피해기업을 모아 집단소송에 나선 것이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으로는 이번 기획은 민후 측의 의도대로 진행됐다.

민후는 종종 이같은 공익소송을 기획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트/싸이월드 해킹 집단 소송이다. 민후는 해킹 피해자들을 모아 SK커뮤니케이션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였다. 수임료 없는 공익소송이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해 2월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SK커뮤니케이즈가 보안 책임을 소홀히 했다"며 소송을 낸 해킹 피해자 2882명에게 위자료 2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개인정보유출 피해자들이 앞서 수많은 집단소송을 벌였지만, 승소를 이끌어낸 것은 이 사례가 유일하다. 민후 측 변호사들이 네이트 서버의 로그파일을 분석해 증거를 찾아냈다.

민후의 김경환 대표 변호사는 “해킹 피해 집단소송에서 피해자(원고)들이 잇달아 패소하면서 변호사들에게 ‘먹튀’ 이미지가 있었다”면서 “법조인으로서의 자존심으로 이 소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네이트 관련 판결 역시 아직 2심이 진행중이지만,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판결 이후 기업들은 고객들의 개인정보보호에 더 신경써야 했다. 보안에 소홀할 경우 회사의 존립이 흔들리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파밍 피해자를 대변하는 준공익 소송 등도 벌이고 있다. 파밍 등의 신종 해킹 수법에 대해 금융기관이 더 엄격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기업들은 리스크가 크지 않으면 보안 투자를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보안 피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기업들이 책임감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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