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하나은행 IT통합일정, 다시 뜨거운 감자 되나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벌써 17년전 얘기다. 1999년 9월, IMF외환위기 발생 이후, 금융 당국 주도로 국내 은행권의 극심한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당시 시중은행이었던 조흥은행(이후 신한은행과 합병)은 강원은행을 흡수합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흥은행은 예상을 깨고 강원은행과의 IT통합을 매우 빠른 속도로 처리하는 데 성공한다. 당시에는 신속한 IT통합이 조직의 물리적 통합을 앞당기고 합병의 후유증을 최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이 논리는 어느정도 유효하다.
당시 조흥은행이 빠른 IT통합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준비가 매우 치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공식적인 합병논의가 시작되기전, 조흥은행 IT부서 직원들이 손님으로 가장하고 강원은행의 점포를 방문해 창구 직원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유심히 살펴본 뒤 IT통합 시나리오를 미리 그려냈다. 창구업무 프로세스를 보면 이와 연결된 전산시스템 운영방식도 역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합병을 완료한 이후, 당시 조흥은행 IT기획부서 관계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랬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이는 전산통합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조흥은행이 이같은 생각을 짜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앞서 1년전인 1998년 6월29일, 그날 일어났던 아프고 혼란스런 기억 때문이다.
당시 경기‧충청‧동화‧동남‧대동 등 5개 후발 은행들이 5개 시중은행들에 P&A방식으로 흡수되는 방안이 전격적으로 발표됐다.
이에 반발한 일부 은행들이 암호키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사의 전산시스템 접근을 막았다, 이 때문에 인수 은행들이 고객 원장 등 핵심 DB를 분실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확산됐다. 다행히 공권력의 개입과 퇴출 은행 IT직원들의 협조로 전산시스템의 접근은 며칠만에 정상화됐다.
이후 IT통합은 2000년대 들어, 대형 시중 은행들간의 합병때도 핫 이슈로 등장했다. 때로는 합병 저항의 수단으로, 때로는 조직 통합의 수단으로, 때로는 합병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위한 수단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외환·하나은행 IT통합논의, 재개 예상 =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법원의 결정으로 잠시 합병논의가 멈춰있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IT통합의 성격도 이중 하나에 속한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IT통합 논의는 공식적으로는 법원이 정한 합병논의 중단 기한인 올 6월까지 진행될 수 없다.
시한인 올해 6월까지 이제 약 1개월여를 남겨놓고 있는 가운데 최근 주목할만한 변수가 생겼다. 외환은행 노조가 지난 20일 하나금융지주측에 ‘향후 5년간 투 뱅크 체제’를 약속했던 이른바 2012년의 ‘2·17 합의서’ 수정안을 공식 제시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합병 논의가 조기에 재개되는 것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하나은행간의 IT통합 문제도 예상보다는 일찍 재개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물리적으로 IT통합이 조기에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앞서 지난해말, 하나금융지주는 두 은행 IT부문 통합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정보기술(IT)전산통합 기일’을 올해 10월9일에서부터 10월11일까지로 정한 바 있다. 약 10개월 정도를 IT통합 기간으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날짜는‘없던 일’이 됐다. 법원의 합병논의 중단 결정으로 4개월여 동안 IT 통합논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제시됐던 지난해 말의 IT통합 일정도 당연히 백지화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법원의 결정이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더라도, 하나·외환은행의 IT통합 일정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 지난해 말 외환-하나은행 IT통합을 단독 제안했던 LG CNS가 ‘2015년 10월9일까지 작업을 마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법원의 결정이 나기전 이미 손을 뗀 상태였다.
◆IT통합 일정, 연내는 힘들듯 = 현실적으로 외환·하나은행의 IT통합 이행일은 당초 정했던 올해 10월이 아니 다른 날을 잡아야 한다.
데이터 이전과 테스트 등 IT통합에 필요한 작업을 하려면 통상 2~3일간의 연휴가 낀 주말을 이용해야하는데 이 날짜를 올해 캘린더에서 찾기는 힘들다. 결국 빨라야 내년 설연휴 정도가 가능하다. 앞서 시나리오대로 잡았던 날짜보다 약 4개월이 늦춰진 것이다.
하나금융이 올해안에 두 은행의 IT통합을 어떻게든 이끌어 내야하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몇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내년 1월부터 전면 시행되는 은행 ‘계좌이동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외환-하나은행 IT통합 일정을 묻는 질문에 하나금융측은 철저하게‘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IT통합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가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이는 또 다시 불필요한 분란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금융측에서 공식적으로는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있지만 IT통합 일정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는 분위기는 느껴진다. 하나금융의 입장에서 IT통합은‘한다면 할 수 있는 일’로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연내 IT통합이 물리적으로 쉽지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더딜것 같지도 않다는 것.
그렇다면 이쯤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외환·하나은행 ‘IT통합의 난이도’ 이다. ‘과연 두 은행의 IT통합이 정말 연내에 불가능한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이와관련 IT업계 일각에선 “두 은행의 IT통합이 실제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나라 대형 은행들은 이미 여러번의 대형 M&A(인수합병)를 통해 IT통합의 노하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외환은행의 협조만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조기 IT통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급한대로 IT통합의 난이도를 조정하면 조기 통합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금융측이 두 은행의 IT통합의 방식과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IT통합 일정이 결정될 것이란 분석인데, 이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얘기다. 물론 이 것도‘외환은행의 적극적인 협조’를 전제로 해야만 성립할 수 있다.
지금은 과거 조흥은행이 강원은행을 IT통합했을 당시의 엿보기 신공이 통하지 않은 시대이고, 또한 그때와는 상황도 완전히 다르다.
IT통합의 성공을 위해서는 치밀한 내부 시나리오가 완벽하게 갖춰져야한다는 것인 상식. 하나금융측이 실제로 어느정도 준비했다면 의외로 IT통합 일정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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