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위 장비업체 램리서치, 5위 KLA-텐코 인수… 반도체 업계 불공정거래 ‘우려’
세계 4위 반도체 장비 업체인 램리서치가 5위 업체인 KLA-텐코를 인수키로 합의했다. 램리서치가 KLA-텐코를 인수할 경우 연매출 87억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거듭나 1위 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의 자리를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각국 규제당국이 이번 인수건에 대한 승인을 내 줄지는 미지수다. 얼마 전 어플라이드는 3위 장비 업체인 도쿄일렉트론을 합병하려 했으나 각국의 불승인으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반도체 장비를 구매해가는 소자 업체들은 “우월적 시장점유율을 활용한 끼워팔기, 장비 부분품 조달 봉쇄, 특허권 남용 등의 우려가 있다”며 물밑에서 합병을 격렬하게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반도체 장비 시장은 상위 5~6개 회사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간 인수합병(M&A) 움직임에 소자 업체들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23일 램리서치는 KLA-텐코를 약 106억달러에 인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매각 대금 가운데 50억달러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주식(약 8000만주)으로 제공한다. 램리서치는 증착, 식각, 세정 장비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최근 노광 공정을 통한 미세화의 한계로 패터닝 공정이 증가하면서 이 회사의 증착 및 식각 장비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KLA-텐코는 검사, 계측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사실상 모든 반도체 생산라인에 이 회사의 검사 및 계측 장비가 들어가 있다. 노광 분야에 네덜란드 ASML을 있다면 검사 분야는 KLA-텐코가 시장을 꽉 쥐고 있다.
합병 완료 후 램리서치의 연 매출은 약 87억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세계 1위 장비 업체인 AMAT의 지난해 연매출은 90억달러 수준이었다. 즉, 램리서치는 합병을 완료한 이후 곧바로 1위를 위협하는 2위로 순위가 껑충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램리서치는 KLA-텐코 인수합병 후 2억5000만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회사의 검사, 계측 장비를 확보하면 영업 측면에서 보다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2020년까지 연간 약 6억달러의 추가 매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는 합병을 통한 추가 매출 달성 전망치 치고는 적은 수치다. 어플라이드는 도쿄일렉트론 합병 발표 당시 2017년 통합 회사의 매출액이 80% 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반도체 소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KLA-텐코의 경우 합병 전에도 대체 수단이 없어 장비 가격 부풀리기, 지연손해금 청구 배제 등 사실상 ‘배짱’을 부리는 일도 많았다”며 “램리서치로 합병되고 이를 무기로 삼으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식각 및 증착 장비의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는데, 규제 당국의 불승인을 고려해 합병회사의 매출 성장률을 낮게 잡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마틴 앤스티스 램리서치 최고경영자(CEO)는 “저전력, 고성능, 소형화 등 고객사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합병 후 더 높은 수준의 기술적 차별화를 달성하고 고객사의 장기적 성공에 필요한 솔루션을 더욱 빠르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램리서치는 각국 규제 당국의 승인을 얻어낸다면 내년 중반께 합병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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