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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아이폰 ‘백도어’ 요청 거부한 애플의 결정

이유지

[디지털데일리 이유지기자] 테러범 수사를 위해 아이폰을 열어달라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법원의 요청을 거부한 팀 쿡 애플 CEO의 글이 화제다. 이로 인해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라는 오랜 갈등과 논란의 주제가 다시 부상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애플 홈페이지에 올린 공개서한(http://www.apple.com/customer-letter/)에서 “미국 정부는 우리 고객의 보안을 위협하는 전례 없는 단계를 취할 것을 애플에 요구했다”며 “우리는 법적 문제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이 명령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 미국 샌버너디노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수사하는 FBI가 범인이 쓰고 있던 스마트폰인 아이폰5C의 잠금을 해제할 수 없자 해제를 위한 기술 지원을 요청한 것에 대한 애플의 답이다.

이 아이폰은 잠겨있을 경우 비밀번호 입력을 10번 틀리면 자동으로 초기화해 폰 안에 있는 모든 데이터가 삭제되는 기능이 동작하고 있다. 게다가 저장된 데이터는 암호화 돼 있다.

팀 쿡 CEO는 “지금 미국 정부는 너무 위험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폰에 대한 백도어를 요구하고 있다. 몇몇 중요한 보안 장치들을 피할 수 있는 새 아이폰 운영체제(OS)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같은 애플의 방침에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 주자를 비롯해 많은 정치인들이 비판을 하고 나섰다.

반면에 애플과 비슷한 입장에 놓인 기업들과 시민단체 등은 환영과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대표적으로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곧바로 트윗에 팀 쿡 CEO의 방침을 지지하는 트윗(https://twitter.com/sundarpichai)을 올렸다. 그는 팀 쿡의 포스팅을 언급하면서 “법 집행기관이나 정보기관이 범죄와 테러리즘을 상대로 국민을 보호하기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도 정당한 요청이라면 협조 한다. 그러나 고객의 기기와 데이터를 해킹해 달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려스러운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한 원칙과 입장을 내세운 애플은 이번 일로 미 정부·기관관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구글같은 다른 민간 기업들과 시민단체, 이용자들 대 정부당국 간 갈등을 부를 수 있는 사안이다.

이번 아이폰 ‘백도어’ 이슈는 2년 전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카카오톡 감청논란 등을 연상케 한다.

카카오 법무팀이 수사당국의 요청에 개인(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직접 선별해 넘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우려한 이용자들이 모바일 메신저를 갈아타는 사이버망명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감청 논란과 카카오의 불응 선언, 그리고 결국 백기를 들고 협조에 요청하겠다는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며 한동안 뜨거운 화두가 됐다.

카카오는 당시 “수시기관의 감청 영장에 불응하겠다. 법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프라이버시를 우선하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강경한 방침을 내놨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일부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입장을 바꿨다.

입장 선회 배경에는 카카오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대주주인 김범수 의장의 해외 원정도박 의혹 내사 등 사정당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전세계적으로 테러나 범죄 위협이 늘어나면서 이같은 이슈는 계속될 것이다.

사실 남과 북이 오랜기간 갈라져 있으면서 수많은 서슬 퍼런 공안정국을 경험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슈이기도 하다.

이미 예전에 선진 민주사회로 진입했다지만 여전히 남북이 갈라져 있는 상태에서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간 사찰’, ‘간첩몰이’같은 이슈도 여전히 시시때때로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운영 전면중단과 폐쇄 등으로 인해 남북 간,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상태가 심각하게 고조돼 있다. 북한발 사이버위협도 계속 커지고 있다.

이같은 대결국면이 장기화되는 와중에 만일 무슨 사건, 사고라도 나게 된다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수사요청에 조금이라도 공권력이 남용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정부당국이 우리 기업들에게 미국 FBI가 한 것 같은 요청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FBI처럼 이용자들이 많이 쓰는 기기 운영체제 등에 백도어나 감청 프로그램을 기업에 심어달라고 요청했거나 이에 응했다는 사례가 공개된 일은 없다. 지난해 여름 논란이 됐던 ‘원격제어 프로그램(RCS)’을 이용한 민간 사찰 이슈도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으로부터 구매한 것이 알려졌던 일이었다.

쉽게 결론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미국에서 벌어진 이번 이슈를 우리도 심각하게 고민하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다.

팀 쿡 CEO가 내세운 거부 이유는 이렇다.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타협은 결국 우리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정부는 이 도구가 제한적인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통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FBI의 선량한 의도를 믿지만 정부가 우리 제품에 백도어를 만들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요구는 우리 정부가 보호해야 하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의 가치를 심각하게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이유지 기자>yj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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