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알파고는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 4일 국내 IT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국산 기술로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겠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발표였다.

2025년까지 매년 100억원을 투입해, 총 1000억원으로 30페타플롭(PF) 성능 이상의 ‘한국형 슈퍼컴’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도자료에 담겨 있었다. 보도자료 배포 이후, 알파고보다 몇 배 빠른 슈퍼컴 개발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연이어 쏟아졌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IT 관계자들은 “대체 정부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이번 계획을 들여다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1페타플롭(PF, 1초에 천조번의 부동소수점 연산이 가능한 처리 속도), 2021년부터 2025년까지는 30PF(1초에 3경번) 이상 슈퍼컴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산·학·연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초고성능컴퓨팅(HPC) 사업단’을 설립하고, 사업단에게 매년 100억원 내외의 연구 개발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 슈퍼컴퓨터는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현재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국가들은 6개월마다 발표되는 슈퍼컴퓨터 순위를 두고 자존심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나라 역시 슈퍼컴퓨터에 관심을 두고 발전계획을 수립해 보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발표대로 10년에 거쳐 국산 기술로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불분명하다. 미래부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으로 촉발된 지능정보사회의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슈퍼컴퓨터 자체개발 사업에 착수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이렇게 만들어진 슈퍼컴퓨터가 어떻게 활용될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슈퍼컴퓨터를 수출해 미국의 크레이나 IBM, 중국의 인스퍼 등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뿐더러, 슈퍼컴 부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PU나 GPU는 대부분이 인텔이나 엔비디아 등의 외산이다. 1990년대 정부는 국산 서버 개발을 위해 타이콤 프로젝트 등과 같은 하드웨어(HW)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산화를 추진해왔지만, 활용 확산 전략의 부재와 글로벌 벤더의 경쟁에 따라 실패한 바 있다.

심지어 최근 전세계 슈퍼컴퓨터 현황을 살펴보면 기술적인 장벽은 점차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와 같이 특정 업체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성되는 것보다는 x86 서버와 같은 커모디티(Commodity) 하드웨어의 연결이나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슈퍼컴퓨터 구축이 가능한 시점에 1PF나 30PF나 같은 수치는 무의미하다. 최근 주춤하긴 하지만, 6개월마다 발표되는 슈퍼컴퓨터의 성능 향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6개월 전에는 최고 성능의 시스템이었을지 몰라도 6개월 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아마도 국산 슈퍼컴퓨터가 개발 완료되는 2025년에 30PF는 개인이 보유한 PC 혹은 스마트폰의 성능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아, 한가지 빼먹은 것이 있다. 계속해서 비교되는(?) 알파고는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바둑을 잘 둘 수 있도록 만든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이며, 인프라는 단순히 연산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리고 알파고의 놀라운 성능을 발휘하도록 활용된 IT 인프라도 역시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구글의 클라우드 인프라, 즉, 분산컴퓨팅을 활용했을 뿐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것은 클라우드 인프라와 같은 시스템이 뒷받침된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이를 구현하는 SW, 즉 알고리즘과 그동안 투입된 무수한 데이터에 있다. 단순히 연산속도가 몇십배, 몇백배 높은 시스템을 만들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최고의 슈퍼컴퓨터라고 할지라도 SW 없이는 깡통에 불과하다. 알파고 역시 클라우드 인프라를 활용해 무제한의 시스템 투입이 가능했지만, 실제 대국에 사용한 클라우드 인프라 상의 CPU와 GPU 개수는 2000여개에 불과했다.

차라리 이러한 예산으로 슈퍼컴퓨터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슈퍼컴퓨터를 어느 부분에 활용했을 때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더 필요하다. 사족을 달자면, 향후 10년 동안 선도적인 한국형 슈퍼컴퓨터를 만들기에 1000억원이라는 예산은 너무 적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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