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디어 생태계 파괴자는 누구인가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을 놓고 말들이 많다.
경쟁사, 학계, 단체 등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보면 일견 수긍도 가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이동통신 1위가 케이블TV 1위를 품에 안게 됐으니 여기저기서 걱정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근거없는 생떼나 왜곡된 전망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잘못된 주장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전체 시장, 생태계, 약자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 철저하게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일부 집단들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방송협회는 최근 정부에 두 번째 인수합병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방송협회는 “이번 인수합병이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교란시켜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피폐화시킬 것”이라며 “정부는 조건부 승인이 아니라 전면 불허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생태계를 교란시킬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방송협회는 인수합병이 되면 CJ E&M의 경쟁채널 송출을 배제하거나 불리한 채널번호를 부여해 최대 81.8%까지 손실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종합편성PP나 지상파 계열 MPP 들을 걱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종편은 의무채널로 지정돼 원천적으로 송출배제가 불가능하다. 기분 나쁜일이 있었다고 지상파 MPP 채널을 이상한 곳으로 마음대로 보낼 수 있을까? 채널 묶음 상품과 채널번호는 플랫폼 사업자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송신 협상으로 마음이 상한 유료방송사들이 채널편성권이 있다고 지상파 채널을 마음대로 이상한 곳에 보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디지털방송 시대에서는 스포츠, 오락, 영화 등 장르별로 블록 편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한 지상파 계열의 스포츠 채널만 또는 종편 한 곳만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플랫폼 사업자가 마음대로 해도 시청자가 용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억지 주장이다.
방송협회 의견서를 자세히 보면 CJ E&M에 대한 언급이 유독 많다는 점도 기이하다. 사실 요즘 시청률이나 화제성 등을 종합하면 CJ E&M의 경쟁채널은 PP가 아니라 지상파 방송 채널들이다. 다른 PP들을 걱정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지상파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춰가는 CJ E&M에 대한 견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방송협회는 시장점유율 50%를 상회하는 독과점형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출현할 경우, 프로그램 구매 협상력이 균형을 잃게 돼 프로그램 사용료가 하락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소 PP는 몰락하고 CJ E&M과 같은 대규모 PP만이 살아남는 식의 방송생태계 황폐화가 심화될 것으로 얘기다.
이 대목에서 점유율 50%는 갑자기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현재 법상으로는 계열 회사를 합쳐도 시장의 3분의 1 이상의 점유율을 가질 수 없다. 합산규제 일몰을 전제로 한 것 같다. 하지만 합병하더라도 점유율이 26%에 불과한 SK가 점유율을 2배 늘려야 한다는 얘긴데 경쟁상황을 감안할 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신료 배분 문제도 그렇다. 수신료는 중소 PP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다.
2014년 케이블TV의 수신료 매출은 1조645억원이었다. 이 중 유료채널, 유료VOD 등을 제외한 36%를 PP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2980억원이다. 이 돈이 바로 방송생태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종자돈 역할을 하고있다.
다시 계산해보자. 케이블TV라는 생태계에서는 월 1700원 가량을 놓고 수많은 PP들이 나눠먹고 있다. 반면, 지상파 방송 3사는 현재 각사당 280원씩 받아가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케이블 및 IPTV와 가입자당콘텐츠대가(CPS)를 280원에서 400원으로 42%나 인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3사 합치면 1200원이다. 유료방송 가입자당평균매출(ARPU)가 채 1만원도 되지 않는 유료방송 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이다.
한정된 재원을 감안한다면 지상파가 가져가는 몫이 커질수록 그 외 PP들이 가져가는 수신료 비중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플랫폼 사업자는 아마도 투자여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200여 PP들이 가져가는 전체 수신료 중 40% 가량을 지상파 계열 PP들이 가져간다고 한다. 현재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간 수익배분은 지상파만을 위한 구조다.
우리의 방송생태계 구성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큰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선정적인 콘텐츠로 시청자 관심을 끌어보려고 하거나 언제적 콘텐츠인지도 모를 프로그램을 무한반복하는 채널도 있다. 백화점이어야 할 종합편성은 일부지만 시사전문점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다큐나 교양 프로그램을 통해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온 지상파의 역할과 공로는 충분히 인정받아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방송업계의 맏형이다. 맏형이면 자기 힘이 세다고 다 먹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동생들에게 양보도 하고 가끔 자신은 굶을 줄도 알아야 한다.
법원에서도 잇달아 CPS를 부정하고 정부가 합리적 협상과정을 만들겠다고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은 참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의무재송신 채널 지정도, CPS 대가산정 논의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었다. 먹을 양은 정해져 있는데 자신들만 더 먹겠다고 힘쓰는 모양새다. 탐욕스러워 보이기 까지 하다.
방송업계 맏형으로서 생태계를 걱정한다고 하면서 정작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베스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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