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구긴 산업은행…그래도 차세대시스템이 추진돼야하는 이유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산업은행은 자존심이 상당히 센 은행으로 꼽힌다.
국책은행에서 출발한 태생적인측면을 포함해 뛰어난 재원들로 채워진 직원 구성과 꼼꼼한 일처리, 그리고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의 좋은 보수와 근무환경 등이 이러한 자존심의 근간이다.
그런데 최근 산업은행은 이러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2100억원 규모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위한 사업자 선정을 3차레나 진행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차는 SK(주) C&C의 단독 입찰로 자동 유찰, 그리고 이어진 2차 입찰에선 LG CNS 컨소시엄측이 제기한 이의제기에 따라 또 다시 유찰됐다. 외부 법무법인의 검토를 거쳐 재입찰이 결정된 것이다.
결국 산업은행은 세번째 입찰 공고를 내보내게 됐다. "무슨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하느냐"고 핀잔을 받을만하다.
지나간 일이지만 1차 유찰의 근본적인 원인을 복기해보자. 당시 LG CNS측은 '프로젝트 예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차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즉, 프로젝트 범위에 비해 사업 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IT업체의 입장에선 사업을 수주해봤자 적자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추진 예산은 앞선 ISP 단계에서 1차적으로 산출된다. 그리고 이 산출금액은 발주자나 응찰자나 어느정도 공감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IT업체가 입찰을 포기할 정도라면 산업은행의 프로젝트 비용(예가) 산정 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는 기존 예산에 비해 차세대 프로젝트 추진 범위가 갑자기 늘어났거나, 아니면 당초 산정한 차세대 예산이 크게 깍였거나 둘중의 하나다. 산업은행이 설정한 2100억원(부가세 포함)의 차세대시스템 예산은 이처럼 전혀 다른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관련해 IT업계에서는 많은 추론들이 나온다. 2차 입찰에서 문제가 된 컨소시엄 참여 업체의 인력자격 논란은 어떻게보면 예상치 못했던 돌발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된데는 산업은행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
물론 얘기를 종합해보면, 산업은행의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도 있다.
어찌됐든 최근 산업은행의 차세대시스템 추진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은 금융IT 시장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당초 산업은행은 2019년 5월까지 27개월간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3차 공고까지 가게되면서, 추진 일정 자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일단 산업은행은 이번 주 중 3차 공고를 통해 차세대시스템 구축 사업자 선정과정을 공정하게 진행한다고 밝혀, 관련 IT업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2차 입찰도 유찰이 가능성이 높아지자 관련 IT업계에선 '산업은행이 아예 프로젝트 자체를 포기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비록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산업은행 입장에선 차세대시스템 착수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노릇이다. 산업은행은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위해 컨설팅 및 PMO 사업자 선정 등 선행투자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이 비즈니스 연속성면에서 중요하다.
또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 차세대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최근 ‘산업은행 혁신방안’을 발표했으며 ▲출자회사 관리체계 개편 ▲구조조정 역량 강화 ▲조직운영 쇄신 ▲지배구조 개선 ▲중장기 미래 정책금융 비전 추진 등 5가지 핵심과제로 구성돼 있다.
현재 건립중인 차세대데이터센터로의 원활한 이전 가동을 위해서도 일정준수가 필요하다. 산업은행은 신축 IT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며, 전산동 선사용 승인은 2018년 9월, 사무동 준공은 2019년 2월로 예정돼 있다. 산업은행은 차세대시스템 개발물을 외부 임차 IDC를 통해 운영하고 신축 IT센터 전산동 선사용 승인시 이전 가동할 계획이다.
산업은행 차세대는 금융IT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공기업으로서 대기업 참여 제한 예외사업으로 인정돼 추진되는 이번 사업에는 컨소시엄 중 중소기업 50% 이상의 참여가 조건으로 달려있다.
한 금융IT 업계 관계자는 “2100억원으로 추산되는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중소기업이 인력을 대기 중이다”라며 “사업이 늦어질수록 이들 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공공SW 개발사업에 있어 법제도가 너무 경직돼 있어 앞으로도 비슷한 경우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LG CNS컨소시엄측에서 문제를 삼은 부분은 SK 컨소시엄 협력업체 인력의 자격 요건으로 SK 컨소시엄 협력업체 소속이 아닌 개발 인력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제안서에 기재된 것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참여제한을 풀기 위해 중소기업 50% 참여를 단서로 달았는데 수천억이 들어가는 차세대사업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는 만큼 인력관리에 허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산업은행 차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업체들의 인원증빙서류만 수천페이지에 달하는데 이를 모두 관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쟁업체들이 상대방의 인력관리 허점을 파고들 경우 향후 발주되는 공공SW사업에서 이러한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 관계자는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제도를 악용하려는 업체가 나오지 말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SW진흥법 내 하도급 관련 법규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안서를 통해 인력 투입 계획을 제안할 때 전체 투입인력을 다 제안받는 게 아니라 처음 한 달은 얼마 이후 나머지 인력을 차등으로 하는 등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금융IT 시장에서는 이번 산업은행 차세대시스템 사업자 선정 과정이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한 업체 관계자는 “대형 차세대 사업마다 크기에 상관없이 잡음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될수록 금융IT 업계 전체의 신뢰성이 하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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