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가지치기의 고통, 보안업계의 자생력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어린 묘목을 심은 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가지치기다. 가장 길게 뻗은 가지 이하의 가지만을 잘라 더 튼튼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적당한 가지치기는 자생력을 길러주고 수십년 이상 뿌리 내려 지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별거 아닌것 같지만 가지치기는 강해지기 위한 자기 희생인 셈이다.

기업 생태계에서도 가지치기는 일어난다. 시장경제 흐름에 따라 도태되는 기업은 사라지고 경쟁력 있는 곳은 살아남는다. 기업이 본질이 아닌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결국 가지치기에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뛰어난 기술력, 탁월한 통찰력, 훌륭한 전략을 가진 기업들이 '가지'가 돼야 하는 구조다. 그래야만 생태계의 지속력이 길어진다. 생존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국내 보안업계 생태계는 어떠할까.

관련하여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비판도 수년에 걸쳐 지속돼 왔다. 정부 품안의 국내 보안업계, 공공기관 의존도만 높다는 것이 현주소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 도입된 대다수 보안 제품은 국산이다. 초창기에는 글로벌 보안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한 배려도 있었다. 국내 보안기업 챙기기에 나서며 정부정책을 통해 밀어주기에 나서기도 했었다. 또 때만 되면 국내 보안의 한류 열풍을 외치며 해외 진출 지원을 추진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바람과 달리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국내 보안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전세계에 브랜드를 알릴 국가대표급 한국 보안업체가 많아져야 하는데, 솔직히 이런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에는 현상황이 역부족이다.

이렇다보니 일부 보안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차라리 시장경제에 맡겨 경쟁력을 키우게 해 자연스레 가지치기가 이뤄졌어야 했다”는 탄식이다. 보호하면 오히려 면역력만 약해지는 역설을 인정해야 할 듯 싶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보안기업들은 은근히 한국 보안기업들을 무시한다. ‘기술력 차이가 커 경쟁상대가 아니다’라는 비아냥이다.

오히려 글로벌 보안 기업들은 더욱 거세게 국내 시장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민간 영역뿐 아니라 이제는 금융·공공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과거와 달리 글로벌 보안 기업을 대하는 국내 공공시장 태도도 많이 누그러졌다는 평가다. 국산 보안업체들에게는 다소 야속하겠지만 언제까지 공공시장의 울타리안에 안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국산 보안업체들에게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인지 모른다. 무엇보다 주변 상황이 녹록치 않다. 냉랭한 시장분위기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했기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해 주식 시장에 상장된 국산 보안기업들의 주가는 공교롭게도 약속이나 한 듯이 모조리 공모가를 하회하고 있다.

주가 관리에 노하우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 정도 평가밖에 받을 수 없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기업공개가 됐다면 독한 모습으로 주가를 관리하는 것도 회사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잣대다.

국산 보안업계가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단 하나다. 원천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하는데는 만가지의 방법이 있다.

회사 경쟁력을 올리는데 필수적인 '핵심 가지'를 자기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체 개발외에도 M&A, 스타트업 육성 등 다양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결국 기존의 잔가지를 미련없이 쳐내는 결단이 전제돼야 한다.

시장은 이제 4차 산업혁명 트렌드에 주목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전환기에도 역시 보안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다. 시장 경쟁력이 있는 보안기술만이 살아 남는다. 국내 보안업계의 힘찬 출발을 기대해본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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