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당신은 은행원입니까? IT회사 직원입니까?”…잔인한 질문

박기록

■ 금융지주사 중심의 '통합 IT 전략'과 예상되는 변화②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당신은 은행원입니까? IT회사 직원입니까?”

어쩌면 이는 은행원으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할지, 아니면 IT전담 자회사로 옮겨야할지를 당장 선택해야하는 당사자에겐 잔인한 질문이 될 수 있다.

아마도 은행 IT본부 소속 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 IT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은행원입니다.”

일선 지점에 나갔다가 다시 IT부서로 들어온 고참급 직원들은 대부분 “이젠 IT업무를 하면서 현업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다”거나 “지점에 나가있는 동안 밖에서 IT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물론 현업이 더 몸에 맞는다는 사람도 있고, IT가 더 천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IT는 ‘매우 중요한 은행 업무의 하나’로 정의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당신은 은행원이냐, IT회사 직원이냐’를 묻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문이다. 최소한 이 질문 만큼은 예스(Yes)나 노(No), 한마디로 잘라서 대답할 수 없다. (은행을 예로 든것은 금융지주사 내에서 은행 계열사의 IT조직이 가장 크기때문이다. 보험, 증권, 카드 등 다른 계열사의 IT직원들도 상황은 동일하다.)

그러나 향후 금융지주사가 ‘IT공유’ (SSC; Shared Service Center)방식으로 그룹내 IT 전담 자회사를 만든뒤 계열사 IT조직과 자원을 통폐합하는 상황을 진행하게 된다면, 계열사의 IT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러한 우문에 답해야할 지 모른다.

은행을 퇴직하고 지주사 계열의 ‘IT 전담 자회사’로 소속이 바뀌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만약 떠나기로했다면 은행원으로써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마음속에 남을 것이고, 그냥 은행에 남기로 결정했다면 피말리는 경쟁이 일상화된 현업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금융지주사가 그룹내 계열사의 IT직원들을 강제적으로 ‘전직’시키는 상황을 무리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강제성을 띠게 될 경우 노조의 반발 등 갈등이 촉발될 우려가 크고, 또 그런식의 방향 전개는 바람직스럽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시중은행 IT부서 출신의 한 전문가는 “굳이 강제성을 띠지 않더라도 계열사 IT직원들은 전직 조건을 꼼꼼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크게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금융지주사도 SSC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IT전담 자회사’를 선택하는 직원들에게 적절한 유인책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직원들 입장에선, ‘은행을 선택할 것인가, IT 전담 자회사를 선택할 것인가’를 예측해보다면, 현재로선 은행쪽에 잔류 의사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기보다는 ‘은행원’을 포기한데 따른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란 분석이다.

그럼 이제 다른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IT 전담 자회사’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면 다시 은행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금융지주사도 민간기업이니 자율적으로 관련 규정을 만들면 된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할런지는 의문이다.

우리금융그룹 외에는 국내 금융권에서 제대로 SSC 방식의 IT통합 사례가 실행된 사례가 없었으니 이러한 ‘전직 철회’ 사례를 찾기는 힘들다.

다만 몇년전 우리금융그룹이 해체되면서 광주, 경남은행을 담당했던 우리FIS 소속 직원들이 다시 은행원으로 돌아간 사례는 있다.

당시 회사측은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서 은행으로 돌아갈 것인지, 회사에 잔류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해당 직원들은 처우및 자녀 교육문제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각자의 사정에 따라 거취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갈등은 없었다. 그러나 이는 민영화로 금융지주사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생긴 특별한 케이스라서 적절한 사례로 보기 힘들다.

이 부분이라면, 과거에 SSC방식을 시도했었던 하나금융그룹 사례가 더 적합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이 차세대시스템을 완료하자 당시 하나은행 IT직원 300명, 하나대투증권 30명을 그룹 IT자회사인 하나아이앤에스로 전직시켜, SSC 방식으로 그룹의 IT지원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은행의 IT직원들을 옮기는 계획은 불발에 그쳤고, 하나대투증권(현 하나금융투자)의 IT직원 20여명만이 하나아이앤에스로 전직을 했다가 몇년뒤 이들중 일부가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하나대투증권에서 파견 근무가 아닌 퇴사 뒤 하나아이앤에스로 재입사 형식이었다.

◆5년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 IT부서의 역할 조정 = 지난 2011년말, KB금융이 IT자원을 통합하는 SSC방식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다가 백지화시킨 이후, 국내 금융지주사에서 SSC 방식 논의가 구체적으로 표면화된 사례는 없다.

4대 금융지주사 모두 2011년~2012년, 이 시기에는 정권 교체기인데다 나름대로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현안들이 있었다. IT는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금융지주사가 계열 IT자원을 통합하기위한 SSC 추진 논의를 내부적으로 중단한 것은 2012년초 발생한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와는 사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지주사 주도의 IT통합 논의를 다시 시작할 여건이 됐다는 의미다. 금융 지주 계열사들의 IT부문을 떼내서 한 곳으로 통폐합하는 시나리오는 그것이 실제로 실행에 옮겨질 것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제 한 번쯤은 도마에 올라와야 할 시점이 됐다.

지난 12일 금융위가 발표한 '2017년 금융혁신 과제'중에서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한 IT 등 후선업무 통합 문구에 집착해서, 이렇게 과도하게 얘기를 풀어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은행내 IT부서의 위상에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은행 조직 구성표상에서 ‘미래금융’조직이 최근 2~3년간 급성장 했다. 조직의 규모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질적인 역할도 늘어났다. 5년전만해도 ‘미래금융그룹’이란 명칭은 은행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금융 전략, 나아가 디지털금융 전략을 총괄하는 전담 조직이 전진 배치되면서, 기존 IT그룹은 미래금융을 지원하는 역할로 조정되고 있다. 비대면채널 중심으로 고객접점이 변경되면서 미래금융 부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금융 파트에서 디지털뱅킹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IT부서에선 이를 받아 개발 및 운영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흐름이다.

또한 빅데이터(Big Data)도 이제는 IT부서의 이슈가 아니라 현업의 이슈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주요 금융그룹의 조직개편에서 IT부서와는 관계없는 별도의 빅데이터 전담 부서가 만들어졌다. '스마트금융' 부문은 과거엔 은행내 IT그룹 조직이 광범위하게 관할했던 영역이다.

올해 금융지주사 회장(CEO)들은 신년사에서 공통적으로 '디지털금융'을 위기 극복과 혁신의 화두로 제시했다. 실제로 거기에 맞는 조직과 인사를 단행했다.

올해 하나은행은 '부행장'으로 미래금융그룹 총괄 임원의 급을 기존 '본부장'에서 한단계 격상시켰다. 농협은행도 기존 스마트금융부를 올해부터 디지털뱅킹본부로 격상시키고 여기에 '부행장보'급의 전담 임원을 배치했다. 지난해까지는 영업추진본부장이 스마트금융부를 겸직했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변화다.

‘미래금융’이 그냥 한번 훅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할 지라도 금융권의 핵심 전략이 ‘미래금융’으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계열사내 IT부서의 역할 재설정을 논의해 볼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상황이 그렇다하더라도, 기존 계열사 IT 부서의 위상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 스럽지 않다. 실제로 IT부서가 전담하는 레거시 시스템의 경쟁력도 미래금융 전략 만큼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이번 금융지주사 경쟁력강화를 발표하면서 IT, 홍보, 구매 등을 '후선업무'로 규정했다. 다만 IT부문을 단순히 ‘후선업무’로 설정하는 것 자체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단순히 IT비용절감을 위해 그룹 ‘IT 전담 자회사’ 설립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계열사 IT직원들이 IT전담 자회사로 전직하게 될 경우, 연봉체계 등 불리함때문에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금융위 관계자는 “지금도 은행내에서는 성과제때문에 업무별로 격차가 많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IT직원들이 IT자회사로)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거 금융지주사 주도의 SSC 논의 과정에서 IT 비용절감 효과는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못했고, 이 때문에 그룹내 조직 구성원들을 설득시키는데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금융지주사 주도의 SSC 도입 논의는 그룹 전체의 ‘IT서비스의 품질 향상’, ‘IT거버넌스의 질적 강화’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문제에서 매우 논리적으로 접근해야한다.

이 부분이 생략된채 IT비용절감 부분만 강조된다면, 향후 IT통합 논의 과정에서 논리의 빈곤함을 곧바로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IT 통합 논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렵고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계열사 CIO의 역할은 축소.... 강력한 권한 가진 ‘그룹 통합 CIO’의 출현 예상 = 현재 국내 금융지주사에는 '그룹 통합 CIO'(최고정보화책임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지주사 CIO를 '그룹 통합 CIO'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룹 CIO 조직표상 가장 윗자리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주요 금융그룹들은 은행 CIO가 지주사 CIO까지 겸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의미를 부여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향후 금융지주사가 SSC 방식으로 그룹 IT전략을 IT전담 자회사를 통한 '통합 체제'로 전환시킬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국내 금융 지주사에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통합 CIO'에 비교적 근접한 사례를 든다면 올해 임원 인사를 단행한 BNK금융그룹을 꼽을 수 있다.

올해 인사에서 BNK금융측은 지주사 IT본부장에 오남환 CIO를 선임했고, 사실상 그룹의 IT전략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겼다. BNK금융의 주력인 부산은행의 CIO를 겸임하고 있는 오 부행장은 올해 그룹 차원의 역점 사업인 '투 뱅크 - 원 프로세스'의 구현, 통합 IT센터 이전 프로젝트 등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사업들을 맡게됐다.

이처럼 앞으로는 ‘지주사 CIO’에게 그룹의 IT전략과 서비스를 통합관리하도록 함으로써 그룹 차원의 IT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싱글뷰(Single View)전략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이를 총괄하는 그룹 차원의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이럴 경우, 향후에는 지주사 CIO가 그룹 ‘IT전담 자회사’의 CEO를 겸직하는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관련하여 금융위는 이번 방안을 발표하면서 금융그룹내 임직원의 겸직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는 기존에는 사전승인 요건이었던 금융그룹내 임직원의 겸직, 업무위탁을 사후보고로 전환했으며, 지주사의 자회사에 대한 권한 강화를 위해 자회사 경영관리업무 등 전략적 의사결정기구(MEC)및 그룹차원의 위험 관리 협의 의결기구(REC)설치를 의무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SSC방식으로 그룹의 IT지원 체계가 바뀌게되면, 기존의 은행, 증권, 보험,카드 등 지주 계열사 소속의 CIO는 계속 존재하겠지만 독립성이 강했던 이전만큼의 위상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CISO(정보보호최고책임자) 조직도 CIO와 같은 궤적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CISO는 당초 도입 취지는 무색하게 이제 사실상 그 역할이 유명무실화되고 있다. 금융 보안 감독의 정책기조가 2015년을 기점으로 자율주의로 전환되면서 금융권에선 CISO를 CIO가 겸직하는 형태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겸직이 아니더라도 무늬만 CISO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국내 금융지주사중에는 CISO를 임원이 아닌 부서장급이 맡는 경우도 있다. CISO는 이번 금융지주사 경쟁력 강화 방안과는 별개로, 최근 금융 당국의 보안정책 변화에 따라 달라진 역할과 위상,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별도의 시각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국내 금융지주사가 외형과 권한을 동시에 강화하는 과정이 불가피한 방향이라면, 그룹 전체의 IT조직 내부의 격렬한 변화도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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