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칼럼

[취재수첩] 시뮬라크르

윤상호
- LG폰, 인문학에서 배워야할 것은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시뮬라크르’는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대중화 된 개념이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은 실체보다 더 실체 같은 가상과 가상 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 고민한다. 시리즈 내내 현실의 삶을 버리고 가상의 삶을 선택하려는 이와 가상의 삶에서 힘을 얻어 현실을 위협하는 캐릭터, 그리고 현실 속 기계군단이 주인공과 대척점에 존재한다. 가상에서 죽으면 현실의 나도 죽는다. 현실의 내가 다치면 가상의 나도 다친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시뮬라크르는 현대사회에서 만들어 낸 이미지 및 가치를 대상에게 각인시킴을 통해 나타난다. 창조한 것과 복제한 것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창조한 것과 복제한 것의 차이가 없어진다는 점은 ‘무엇이 원조인지’보다 ‘무엇이 이미지 및 가치’가 있는지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물이 시뮬라크르, 시뮬라크르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시뮬라시옹이다.

현재 정보통신기술(ICT)업계는 ‘혁신’을 화두로 삼고 있다. 혁신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와는 다르다. 이미 만들어진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혁신이다. 우리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애플을 꼽는다. 스마트폰은 애플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다. 애플이 이미 있던 제품의 주요 기능을 하나로 모으고 단순화 한 것이 아이폰이다.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에 당대 최초 기술을 넣는데 인색하다. 당대 보편화 직전 기술을 도입한다. 그래도 대중은 아이폰을 최고의 스마트폰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애플 브랜드는 이용자에게 또 다른 가치를 준다.

한국 기업이 인문학에서 배워야 한다는 조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기술뿐 아니라 스토리를 만드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여기서 출발한다. LG전자는 휴대폰 사업을 애플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존재감이 사라지기 직전이다. 애플이 세계 최초를 강조했던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LG전자 관계사인 LG디스플레이가 만들었다. LG전자는 고가 스마트폰에 세계 최초 모듈형 디자인을 적용했다. 또 세계 최초 전후면 광각 카메라, 세계 최초 쿼드DAC(Digital to Analog Converter,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을 장착했다. 작년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오는 26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스마트폰 신제품 ‘G6’를 공개한다. 3월 전 세계 순차 출시 예정이다. LG전자는 제품 공개를 앞두고 G6에 들어간 신기술을 조금씩 흘리고 있다. 기술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마케팅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소비자가 LG폰을 외면한 것은 ‘세계 최초’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LG폰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보다 새로운 이미지다. G6가 그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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