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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수직계열화의 한계

이수환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난해 소프트뱅크에 인수된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ARM의 득세는 누구나 손쉽게 스마트 기기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단순히 ARM이라는 기업 하나로 인해 발생한 일은 아니지만 산업의 커머디티화(제품의 일반화 또는 평준화, 동일화)에 상당한 일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쉽게 칩을 만들 수 있으면 경쟁자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사실 세트를 담당하는 기업이나 사업부 입장에서 무조건 계열사에서 만든 부품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물론 성공하면 전사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는 있다. 어디까지나 제품이 잘 팔렸을 때를 가정해서다.

반대로 제품 판매가 부진하면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다. 가령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를 장착한 제품이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도미노 실적부진이 이어진다.

이 자리에서 수직계열화, 수평계열화의 우위를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반도체·전자산업이 상당한 기간 동안 수직계열화를 추진했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했다.

커머디티화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ARM은 이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제품의 상향평준화를 이끌었다. 부족한 부분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메꿨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래픽처리장치(GPU) IP 업체인 팔랑스다. 이 또한 ARM 자체로 보면 수직계열화인데 중앙처리장치(CPU) 영향을 높이면서 GPU를 (저렴하게) 함께 끼워서 팔다보니 지난 몇 년 동안 급속히 세력을 확장했다. 중화권 시스템반도체 업체의 상당수가 ‘코어텍스(CPU)+말리(GPU)’ 조합을 가지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최근 들어서 GPU 성능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다는데 있다. 핵심 고객사 몇몇은 벌써부터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한 상태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컴퓨터비전, 이기종컴퓨팅(헤테로지니어스) 구현에 있어서 GPU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반도체 업계는 제로금리 덕분에 공격적인 M&A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언급한 것처럼 금리상승은 이제 피할 수 없다. 이전만큼 수직계열화가 어렵다는 의미다.

커머디티화로 인해 일종의 ‘착시’ 효과와 함께 수직계열화의 단점을 경계해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 같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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