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IT기업 정규직이 공공기관 정규직으로"…황당 사태 왜?

이상일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처음 내용을 들었을 때는 뭔가 오해가 있겠거니 했다.

멀쩡한 SW·SI업체의 정규직 직원도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오독했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얘기한 것은 분명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이다. 즉, 이 정책의 대상은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당연히 최근의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상황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황당하게도 공공기관에 파견나간 IT기업의 정규직원이 공공기관의 정규직 오퍼를 받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이 일선 현장에선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장들이 연말 성과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위해 '정규직 전환' 숫자를 무리하게 맞추다보니 멀쩡한 IT업체에서 파견나온 정규직들까지 전환까지 대상에 포함시킨 것" 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정규직원을 애써 키워왔던 SI, SW업체들이 난데없이 인력 유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일부 공공기관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노사협의체를 구성하자고 SW・SI기업에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다. 8월말까지 실태 조사가 끝나면 9월부터는 본격적인 전산업무 부문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산업무 부문 ‘파견·용역’ 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에 문제가 되는 것은 SW·SI기업의 ‘정규직’ 직원이 공공기관에 파견 나갔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의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멀쩡한 IT기업의 '정규직'의 인력이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SW·SI기업이 고용한 계약직과 프리랜서도 이에 해당하지만 업계에선 이를 문제삼기 보다는 자사의 정규직 핵심 인력 유출에 보다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SW기업의 정규직 직원이 공공기관의 정규직 직원으로 일자리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자리를 바꿀 사람은 얼마나 될까.

IT서비스업체의 인사담당자조차 “자기도 그런 기회가 온다면 고민할 수 있다.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답한다. 또 다른 IT서비스업체 경영기획팀 관계자는 “연봉이 줄어들어도 안정적일 수 있다면 옮긴다”고 말했다. “을 생활이 지겨워 갑으로 갈 수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회사를 대표해선 결이 다른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환영하지만 SW ‘업’을 생각하면 이번 정부의 움직임은 실망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멀쩡한 정규직 직원을 공공기관의 정규직으로 빼가겠다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다. 81만개 일자리를 공공부문에서 창출하겠다는데 목표 달성을 위해 저인망으로 정규직 대상은 모두 전환하겠다는 것이냐”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외부에서도 이번 사안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는 양상이다. SW기업이 개발자나 시스템 운영인력에 대해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 먼저 나온다. SW・SI기업이 공공기관의 전산업무에 파견하기 위해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를 고용해 운영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 인력은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시장이 망가진다는 운운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SW・SI기업들은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선 정규직 전환을 꾸준히 진행해왔다고 항변한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 정책이 일자리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멀쩡히 SW・SI기업이 고용한 정규직 직원까지 전환 대상으로 놓고 있다는 것은 산업에 대한 무지가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인력파견을 주 사업으로 하던 SW용역업체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SW용역업체는 자체적인 인력양성 등에 신경쓰지 않지만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SW・SI기업들은 개발자와 SM인력을 위한 교육과 투자를 해오고 있다. 여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확보를 위해 R&D와 교육 등에 투자해 온 양심적인 중소 SW・SI기업들의 당혹감은 그래서 더 크다.

SW・SI기업들은 정부의 전산업무, 나아가 SW・SI ‘업(業)’에 대한 무지가 드러난 대목이라는 점에서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파견과 용역이라는 단어에 묶여 이들 직원이 한 기업의 정규직 직원임은 까맣게 잊은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이번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은 분명 매력적인 제안임에 분명하다. 계약직 및 파견직 근로자들에게는 이번 정부의 정규직 전환은 기회일 수 있으며 공공기관의 사업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SW・SI기업의 정규직 직원까지 포함되는 것은 과도한 정책 해석임이 분명하다. 중소기업이 애써 키워놓은 인재를 대기업이 빼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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