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빅뱅식 '차세대시스템'이 던지는 화두

이상일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차세대시스템 오픈 이행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일은 잠정 중단합니다. 현재 업무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세부사항은 오전 중 협의해 재전달하겠습니다”

지난 13일 오전. 우리은행 차세대시스템 구축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각 개발담당 프로젝트관리자에게 전달된 문자 메시지. 시스템 오픈을 잠정 중단한다는 내용.

우리은행이 설 연휴기간 동안 차세대시스템 이행을 위해 대부분의 금융서비스 중단을 고지한 이후에 이뤄진 갑작스런 통보는 우리은행의 이번 결정이 급박하게 전개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은행이 이처럼 과감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과거에 겪었던 아픔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00년 3월 시작됐던 우리은행 차세대 전산프로젝트는 코어뱅킹시스템의 오류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2년 9월 완전히 백지화된 바 있다. 결국 2년 동안 백지상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해서 2004년9월에 이르러서야 시스템을 오픈할 수 있었다.

코어뱅킹솔루션의 오류 현상외에도 당시 우리은행은 사업 발주 이후 지주사 편입 및 평화은행 통합, BPR(후선업무 집중화) 프로젝트, IT자회사 설립 등 시스템 설계 변경 요인이 집중적으로 발생해 시스템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KPMG의 프로젝트 감리 컨설팅 결과를 받아들여야했다.

일반적으로, 대형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겪어본 은행들은 대형 사업에 일정 부분 내성을 갖게된다.외부의 시각과 달리 내부에서는 시스템 오픈이 미뤄지더라도 받는 타격이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밖에서 호들갑을 떨 이유는 없다"고도 말한다.

현재 우리은행의 차세대시스템 오픈 일정 변경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이번 우리은행의 차세대 오픈 일정 연기는 국내 금융IT 업계에 다시 '빅뱅식' 대형 차세대시스템 구축 방식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빅뱅식으로 이뤄지는 차세대시스템은 IT시스템을 단기간에 한꺼번에 혁신하는 순기능은 인정받아왔지만 한편으론 ‘시대적 조류에 맞지않는’ 방법이라는 비난도 동시에 받아왔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시스템 오픈 연기가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이유를 물으니 “명절에 쉴 수 있어서”였다. 예전에는 차세대시스템 구축의 성공이 마치 ‘무용담’처럼 회자되는 때가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럴지는 의구심이 드는 바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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