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개소주 소동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이제 막 초복(初伏)을 지났다. 큰 더위가 올해 두 번은 더 남았다는 뜻이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자 확실히 몸에 기운도 없고 입맛도 없다. 복날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로 삼계탕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보신탕 식당도 손님으로 붐볐다.
보신탕 업주들은 매출이 줄어든 배경에 개식용 반대 운동 영향이 있다고들 한다. 복날을 전후로 광화문에서도 동물보호단체와 육견협회가 동시에 찬반 집회를 열었다. 17일 미국 LA에서도 연예인들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개고기 문제는 해묵은 갈등이다. 수십년 동안 매년 반복됐다. 서로 반대 측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이 문제는 온라인 시장에도 번졌다. 쿠팡, 11번가 등에서 개소주를 판매하던 업주가 이달 초 봉변을 당했다. 개소주는 개고기를 통째로 한약재와 함께 소주 고듯 고아낸 음식이다. 이를 쿠팡에서 발견한 애견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며 크게 분노했다. 상품 판매 페이지에 항의글이 쏟아졌고, 판매자에게는 욕설과 항의전화가 하루 수백통 이상 이어졌다.
불똥은 쿠팡에게도 튀었다. ‘반려동물용품도 파는 쿠팡에서 어떻게 개고기 가공품을 팔 수 있느냐’는 것이 요지다. 불매운동 예고도 나왔다. 3년 동안 별 문제없이 판매됐던 제품이지만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이 제조업체는 이 사건 이후 자사 쇼핑몰에서도 개소주 판매를 중단했다. 업체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혹시 개소주…”라고 얘기를 꺼내자마자 “누군데 그런 것을 묻느냐, 기자가 맞으면 일단 명함부터 보내고 기다려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항의전화로 얼마나 시달렸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개고기 가공식품의 생산, 판매, 섭취는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 개는 축산법상 가축에는 포함되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라 관련 규제가 없다. 쿠팡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에서도 판매를 중단시킬 명분이 없다.
통상 판매자 약관에는 ‘사회통념상 매매에 부적합’ ‘기타 합리적인 사유’로 판매를 제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사회통념’ 자체가 매우 불분명한 기준이다. 최근 비슷한 사례로 ‘태권도 맘충’ 사건이 있었다. 한 여성이 인터넷에 허위글을 게시해 태권도 학원 차량 기사를 모함한 전말이 밝혀지자, 이 여성과 관련된 판매업체를 이커머스에서 퇴출시키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마다 가운데 낀 플랫폼들은 입장이 난처하다. 판매를 계속 이어나가자니 기업 이미지 손상 및 불매운동으로 인한 매출 하락이 문제다. 판매를 중단시키자니 판매자를 설득할 명분도 없고, 자칫 잘못하면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업계에서 일어났던 메갈리아 논란과 비슷한 문제”라며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극단적인 페미니즘 성향 메갈리아 단체와 관련된 인물이 있다며 이용자들이 게임 결제를 보이콧한 사건이다. 이는 여성혐오, 사상검증 논란으로도 이어져 사회적 문제가 됐다.
게임 이용자와 페미니즘 진영 양 측이 첨예한 대립을 보인 메갈리아 논란과 달리 개소주 문제는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건강식품 대체제가 많고, 판매권 보호를 주장할 만큼 개소주 애호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갈등이 커지지 않았다고 다행스런 일은 아니다. 반려동물인구에 비하면 개고기 가공업계는 수적으로나, 영향력으로나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이번 판매자 역시 공론장으로 이 문제를 끌어내 사회적 합의를 논의해 볼 기회도 갖지 못했다. 이커머스 업계 역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소비자 뜻에 무조건 맞출 것인지도 고민해 볼 문제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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