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씁쓸한 알뜰폰 정책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정부와 SK텔레콤간 지루한 알뜰폰 도매대가 협상이 최근 마무리 됐다.

알뜰폰은 망을 보유한 이통사에게서 대가를 지불하고 망을 임대해 사업을 한다. 이통사는 MNO(Mobile Network Operator), 알뜰폰은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이다.

기업의 규모, 거래의 투명성 등을 감안할 때 MNO는 '갑', MVNO는 '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민간 기업간 거래지만 협상은 '갑'을 누를 수 있는 정부가 대신해왔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알뜰폰 가입자는 7월말 기준으로 약 788만명으로 전체 이동전화 점유율 10%를 넘겼다. 가계통신비 절감이라는 알뜰폰 존재의 목적은 나름 달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고 브랜드, 결합혜택 등을 제외하고 요금만 놓고 보면 중저가 부분에서 알뜰폰의 요금 경쟁력은 확실히 이통사보다 우위에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모래위에 쌓은 성일 뿐이다. 정부가 알뜰폰 사업자 멱살잡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40여개나 되는 사업자가 존재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는 사업자는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당장 전파사용료 면제 혜택만 사라져도 수십여 사업자가 줄폐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알뜰폰 사업자 자구노력도 찾기 어렵다.

MVNO는 여러 종류가 있다. 단순히 망을 빌려 이통사보다 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단순MVNO부터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직접 요금제를 설계할 수 있는 풀MVNO도 있다. 국내 알뜰폰 사업자들은 모두 싸게 도매로 물건을 떼어와 마진 조금 보고 파는 식의 사업구조를 지속하고 있다. 단순한 사업구조이다보니 MVO가 요금을 내리면 바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정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덩치에 비해 체력은 왜이리 약한걸까.

정부가 마진을 남길 수 있는 수준으로 협상을 진행하다보니 중소 사업자 입장에서는 굳이 별다른 마케팅이나 투자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우체국에서 판매도 대행해준다. 협상부터 판매까지 정부 손이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사업자 자립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편에서는 나름 힘겹게 투자를 진행한 CJ헬로 같은 사업자는 대기업 계열이라는 이유로 우체국 판매 같은 혜택에서는 벗어나 있다. 가끔 알뜰폰 정책을 보면 통신요금 인하 정책인지 골목상권 보호 정책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덩치 큰 이통3사와 경쟁해야 할 판에 영세 사업자 수만 늘리고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도 알뜰폰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은 이어져야 한다. 사업자간 자율협상에 맡겨 놓으면 ‘을’ 알뜰폰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협상으로는 알뜰폰 내실을 키우기는 커녕 온실의 화초로만 만들 뿐이다.

주요 MVNO에 대해서는 풀MVNO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데이터 선구매제도를 도입해 이통사와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이통사 상품에서 몇퍼센트 요금이 싼 상품을 출시하는 알뜰폰이 아니라 이통사가 찾지 못한 곳, 서비스별로 특화된 요금제 출시가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정부의 지원정책이 과연 알뜰폰을 살찌우고 중장기적으로 통신요금 인하 목적에 부합한 것인지 생각해 볼 때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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