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국민은행–티맥스, 결국 서로 ‘가슴 아픈’ 공방일뿐... IBM이 악마일까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지난 17일 오후, 티맥스소프트(이하 티맥스)는 기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KB국민은행의 더 케이 프로젝트 불공정 SW 제품 선정에 대한 티맥스의 절박한 입장을 18일 오전에 밝히겠다’는 내용.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금융IT업계는 17일 저녁부터 술렁거렸다. “과연 무슨 내용이길래...”

전산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가 발주사인 금융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진위 여부를 떠나 매우 이례적이다. ‘앞으로 국민은행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또한 티맥스로서는 국내 금융권에 '트러블 메이커'의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한다.

예고한대로 티맥스 김동철 대표는 1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국민은행 차세대 사업과 관련한 SW입찰을 진행하면서 국산 SW가 원천 배제당했으며, 그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내용. 입장문에는 국민은행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2014년의 ‘KB 전산사태’까지 소환됐다.

하지만 절절했던 티맥스의 이날 입장문이 국내 금융권과 관련 IT업계로부터 과연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는 의문이다.

이날 금융권 IT 관계자들은 티맥스의 주장과 국민은행의 반박, 모두에 대해 극단적인 평가는 유보했다. 다만 티맥스측의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과연 이것이 기자 회견을 할 정도의 하자나 중대성이 있었는지 의아스럽다는 시각이 대체로 더 많았다.

더욱이 이번 국민은행 '더 케이 프로젝트'에서 티맥스측에서 문제삼은 사업은 금액으로 봐서도 결코 큰 액수는 아니어서 이처럼 강수를 둘만한 다른 속사정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컨소시엄 참여 IT업체 교체, 종종 있는 일 =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티맥스가 제기한 입찰과정과 관련, 국민은행에겐 특별한 하자가 없다.

티맥스로선 서운하겠지만 국내 은행권 차세대 사업에서 컨소시엄에 참여한 IT업체중 일부가 교체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다.

더구나 티맥스는 국민은행이 SK(주) C&C로부터 제안받은 2개안 중에서 1안에만 후보로 포함돼있었기 때문에 컨소시엄 단계에서조차 최종 후보로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다.

컨소시엄에서 후보로 확정됐다고 하더라도 우선협상과정에서는 참여업체 교체 등 변화가 일어난다. 지난 2016년1월, 우리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서 그랬다. 당시 우리은행은 주사업자인 SK(주) C&C와 우선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4개 SW회사를 막판에 교체했다.

탈락한 SW업체들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측이 제안요청서 등에 교체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규정이 불합리해 보일 수 있겠지만 이미 금융권에선 오래전부터 이를 관행화한 이유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관련 금융권의 한 IT 전문가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차세대 사업은 우선협상과정에서 꼼꼼해질 수 밖에 없다”며 “최종적으로 기술, 가격 조건 등을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일부 참여업체를 교체하기도 하는데 이 자체가 특별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후 국민은행은 반박 자료를 내면서 우선협상 진행과정에서 변화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물론 이러한 변경 논의 자체가 국민은행과 SK(주) C&C간의 계약위반 사항은 아니다.

국민은행측은 “(우선협상과정에서) 비용절감 및 제품 성능 등을 감안해, 복수 벤더 제품의 계약 형태를 ‘용량단위’ 계약에서 ‘통합 ULA(무제한 라이선스)’계약 형태로 변경하는 것에 SK(주) C&C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통합 ULA 조건을 IBM이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입찰업체인 오라클측은 “국민은행과의 가격 협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IBM은 과연 ‘악마’인가? = 티맥스는 이번 국민은행 차세대 사업에 미들웨어, DBMS 두 부문에 자사의 솔루션을 제안했다. 티맥스의 미들웨어는 ‘제우스’, DBMS는 ‘티베로(Tibero)’다.

하지만 DBMS는 IBM의 ‘DB2’, 미들웨어 역시 IBM의 ‘웹스피어’로 최종 결정됐다. 이는 당초 SK(주) C&C가 복수 제안한 1안(미들웨어 제우스, DBMS는 티베로와 DB2)과 2안(미들웨어 오라클 ‘웹로직’, DBMS ‘오라클’)과 다른 결과다.

당초 1, 2안 모두에 미들웨어인 IBM ‘웹스피어’는 없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우선협상과정에서의 조건 변경은 국민은행과 SK(주)C&C간의 협상으로 통해 변경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IBM이 영악스럽고 얄미울 뿐이다. IBM의 DBMS인 ‘DB2’는 국내에선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다. 여전히 국내 금융권 DBMS시장에선 가격이 비싼 오라클이 강자다.

IBM이 ‘DB2’를 제안하면서 동시에 미들웨어인 ‘웹스피어’를 사실상 무상에 가깝게 제공하는 파격안을 국민은행측에 제시했고, 결국 IBM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결과는 티맥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놓고 티맥스는 “국민은행이 외산 SW만 선호하며, 특히 IBM에 대한 종속이 심화됐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비약이다. 국민은행이 현재 주전산시스템(IBM 메인프레임)을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IBM에 대한 종속성 강화와는 관계가 없다. 국민은행은 스스로 계정계시스템에 대한 혁신이 아직은 시급하지 않다고 판단, 7년간 계약을 더 연장해서 쓰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은행권에서 계정계시스템의 변화, 즉 주전산시스템 기종 변경은 핵심 이슈가 아니다.

국민은행은 주전산시스템을 ‘유닉스’(UNIX)로 전환하는 것보다 더 저렴한 조건으로 ‘IBM 메인프레임’을 유지하기로 IBM과의 전산계약을 갱신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유닉스로 전환할 이유가 없어졌다. 알고보면, 한국 시장에서 퇴출위기에 몰린 IBM 메인프레임을 역이용해 적절하게 실리를 챙긴쪽은 오히려 국민은행이다.
그런 이유때문에 국민은행의 차세대시스템인 ‘더 K 프로젝트’는 계정계시스템을 제외한 정보계 및 채널계, 글로벌 뱅킹시스템 재구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한편으론 이번 딜에서 IBM이 과연 승자일까.

국민은행측이 내놓은 반박 자료에서 주목할만 부분이 ‘통합 ULA(무제한 라이선스)’계약이다. ULA는 사용자수가 늘어나도 라이선스 금액이 증액되지 않는 계약 방식이다. 이는 국민은행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ULA계약에 따른 부담은 향후 IBM이 짊어져야한다. IBM의 입장에서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티맥스소프트의 눈물… 보완해야 할 부분은? = 국민은행측은 반박 자료에서 티맥스의 DBMS인 ‘티베로’를 선정하지 않은 이유로 ‘아직 국내 은행권에서 충분히 검증이 안됐다’는 점을 들었다.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티맥스에게는 뼈아픈 팩트다. 국민은행의 지적이 일반적인 국내 금융권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물론 티맥스가 오라클에 당당히 맞서 국내 기간계 DBMS 시장의 대항마로 ‘티베로’를 개발한 것은 국내 IT업계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받는 일이다. 또한 국내 금융권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티베로’를 DBMS로 채택하고 싶다는 의사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티맥스는 금융권에 어필해왔고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회사임에 틀림없다.

다만 아직 국내 은행권 차세대시스템의 핵심 DBMS로 ‘티베로’를 채택하기에는 절대적 경험치가 쌓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혁신기술을 이번 차세대시스템에서 수용해야하는 국민은행의 입장에선 티베로를 선택하기가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울 수 있다.

이런 이유때문에 국민은행은 어쩌면 처음부터 DBMS 부문에서는 티맥스의 '티베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티맥스측은 "그렇다면 뽑지도 않을것면서 왜 우리를 들러리로 세웠느냐"고 국민은행에 따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국민은행이 컨소시엄 단계에서부터 아예 티맥스를 배제했다면 이번에는 '국산 SW는 아예 입찰 기회도 안줬다'며 더 큰 문제가 됐을지 모른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티맥스는 마치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이번 국민은행의 선택에 너무 속상해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티맥스에게 기회는 또 다시 찾아오고, 내년에도 금융권 차세대 사업은 계속된다.
관련하여 은행 출신의 한 IT업계 관계자는 티맥스에게 필요할만한 조언을 건넸다.

“국내 금융권은 지난 수십년간 오라클 DBMS에 익숙해 있다. 반면 아직 금융권에서는 ‘티베로’를 잘 아는 인력은 부족하다. 그것은 티맥스의 약점이다. IBM ‘DB2’도 국내에 전문 인력이 풍부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티맥스가 금융권에서 충분한 신뢰를 받으려면 ‘티베로’를 지원한 전문인력을 키우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국민은행은 왜 IBM을 선택했을까?… “너무 빡빡한 IT예산이 원인” 지적 = 주지하다시피 국민은행은 IBM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지난 2014년 한국IBM 대표였던 ‘셜리 위 추이’, 지금은 IBM을 아예 떠나버린 그녀의 이메일 한 통으로 촉발된 ‘KB 전산사태’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로 IBM과 결별하고 싶은 쪽은 국민은행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IBM 제품을 2개나 선정했다. 사실 정작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이 부분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국내 금융권에선 DBMS는 ‘오라클’, 미들웨어는 티맥스 ‘제우스’의 선정 가능성을 높게 점쳤을 것이다.

특히 IBM ‘DB2’가 선정된 것은 예상밖이다. 전세계적으론 많은 레퍼런스가 있지만 국내 금융권에선 ‘DB2’가 오라클에 크게 밀리고 지원 인력도 오라클에 비해 풍부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더 K 프로젝트’의 빠듯한 예산이 지적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더 K 프로젝트’ 예산은 당초 2500억~3000억원 선으로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1500억원 수준에서 국민은행 이사회를 통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무리 계정계 부분을 프로젝트에서 제외했더라도 1500억원이면 매우 빠듯한 IT예산이다.

IT예산에 여유가 없다면 국민은행 입장에선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결국 IT예산의 제약때문에 국민은행도 자신들에게 익숙한 ‘오라클’ 대신 IBM ‘DB2’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용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제한된 예산속에서 차세대 사업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국민은행측도 속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민은행이 덩치에 어울리지않게 IT예산을 적게 편성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국민은행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짰던 전임자들이 사업 범위를 너무 좁게 생각했거나 아니면 입찰에 참여한 IT업체들을 경쟁시켜서 가격 다운이 가능할 거라고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했을 수 있다.

결국 이런 저런 정황을 살펴보면 국민은행이나 티맥스, 양측은 결국 18일 하룻동안 서로 가슴 아픈 공방만 벌인 셈이 됐다.

국민은행과 티맥스, IBM 모두 각자 자신이 걸터앉은 경계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은행은 빠듯한 IT예산의 제약속에서 고충을 겪고 있으며, 티맥스는 이번 기회에 은행권 DBMS의 주류로 편입되고 싶었으나 기회를 뒤로 미뤄야 했고, IBM은 국내 금융권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메인프레임을 지키기위해 자사 제품의 출혈 경쟁도 불사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티맥스가 분노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 또 하나 이해가 안됐던 부문은 티맥스가 예상밖으로 강하게 국민은행에 반발한 진짜 이유다.

몇가지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이날 티맥스는 입장문을 통해 '지난 2013년12월부터 2014년3월까지 4개월간 100억원에 해당하는 SW무상 제공과 60명에 달하는 인력과 경비를 무상 지원하면서 국민은행의 기술검증에 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의 국민은행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은행장과 CIO, IT본부장 등이 모두 새얼굴로 바뀌었다.

우선, 사업 내용이 지금과는 다르다. 당시 '탈 IBM 메인프레임'을 추진했던 국민은행은 차세대시스템의 대안으로 리호스팅(Rehosting) 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 '리호스팅'이란 기존의 업무시스템은 기존대로 두고 하드웨어(주전산기)만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과거 삼성생명 등을 포함해 차세대시스템 구축 효과를 본 몇몇 사례가 있으나 국내 은행권에선 아직 사례가 없는 IT혁신 방식이다.

'리호스팅'은 이 부분에 특화된 기술력을 가진 티맥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당시 티맥스가 이를 준비하는데 많은 인력과 자원을 쏟아 부은 것은 사실이다. 만약 당시 국민은행이 리호스팅을 예정대로 추진했었다면 티맥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티맥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아마 이 부분이 국민은행측에 많이 섭섭하고 야속했을 것이다. 티맥스측은 국민은행이 5년전 리호스팅사업을 말만 꺼내고 진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상을 이번 차세대시스템 사업에서 어떻게든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한편, 일각에선 티맥스의 박대연 회장과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이 고교 선후배간이라는 점을 들어, 티맥스의 상실감이 더 컸을거라는 해석도 내놓지만 KB금융의 의사결정 구조상 이는 지나친 추론이다.

◆‘국산 SW’애용?… 금융권에선 중요한 결정기준은 아냐 = 티맥스소프트가 이날 국민은행을 비판하면서 강조한 것은 ‘국산 SW에 대한 홀대’문제였다. 그러면서 국민은행의 국산SW 채택율을 공개했다. 그러나 사실 현 시점에서 적극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든 논리다.

첨언하자면, 국내 금융권에서 외산SW, 국산 SW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긴 한다. 물론 과거에는 외산을 더 높게 쳐주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외산이든 국산이든 효율적이고 가격경쟁력이 있으면 ‘좋은 SW’일 뿐이다.

국산 SW중에서 국내 금융권에서 채택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제품들이 존재한다. 이는 그것이 국산이라서가 아니라 제품의 자체 경쟁력이 높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클라우드 시대, 오픈 플랫폼이 국내 금융권에도 거세게 불기 시작하면서 외산, 국산SW의 구분은 더 엷어지는 추세다. 오히려 국산 SW가 클라우드 플랫폼을 타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기회가 더 커지고 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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