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고래 싸움과 새우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싸움이 일어날 때 실제 이유보다 ‘명분’으로 상황의 합리성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조차 엄마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생을 쥐어박을 때, 반말을 해서라고 말한다. 기업 간, 국가 간으로 세계를 확대해 보면 이면의 실제 이유와 내세우는 명분 사이 간극은 더욱 커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화웨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화웨이는 보안 우려를 받고 있다.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화웨이 문제는 보안으로 점철되는 사안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의 연장선이다.

현재 미‧중 무역전쟁은 휴전에 접어들었지만, 정전은 아니다. 다시금 타오를 수 있는 전선이다. 양국 간 기술 무역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4월 중국 ZTE와 미국기업 간 거래를 금지시켜 사실상 파산위기에 몰리게 했고, 이번에는 화웨이를 겨냥했다.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하기까지 했다. 화웨이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로 미국기업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미국은 중국 기술굴기를 막기 위한 무역전쟁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인텔, 브로드컴, 퀄컴은 화웨이에 11조원이 넘는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 직격탄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강공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중국이 기술경쟁에서 우위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5G에서 중국은 미국보다 앞서 있다. 화웨이는 5G 장비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과 합리적인 비용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대표적인 중국기업이다.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가 지난 4월 선정한 5G 기술을 가장 잘 준비한 10개국에서 중국이 1위, 한국이 2위, 미국은 3위를 기록했다.

미국이 화웨이가 중국정부로 주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번 고래싸움에서는 보안문제가 명분으로 작용한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보를 훔치는 통로인 백도어 문제는 상당수 네트워크 장비와 심지어 안티바이러스(백신) 등에서도 발견된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2015년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 국가안보국(NSA)이 미국 네트워크 통신업체 시스코의 라우터 장비 일부에 백도어를 설치, 인터넷을 도감청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당시 시스코는 중국사업에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은 모든 연방정부에서 러시아 보안기업 카스퍼스키랩 제품을 퇴출시켰다. 러시아 정부와 유착관계에 있는 카스퍼스키랩이 미국 내 핵심기술과 정보를 빼내간다는 미국 측 주장이다. 이에 카스퍼스키랩은 소스코드까지 제출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려 했으나 미국은 증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알려져 있듯, 러시아와 미국은 사이버전쟁 중심국가다.

물론, 화웨이에 보안문제가 단연코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결코 ‘보안’만이 전부인 논란도 아니다. 한국에도 불똥이 튀었다.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를 5G 장비사로 선정한 LG유플러스도 매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보안검증을 모두 받겠다며 정면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화웨이 장비는 LG유플러스뿐 아니라 통신사 유선망에 모두 깔려 있다.

한국 통신사와 기업이 화웨이만 도입하지 않으면 풀릴 수 있는 사태가 아니다. 양국 기술패권 경쟁이 계속되는 한 또 다른 중국기업으로 번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모든 중국기업을 배제할 수도 없다. 안타깝지만, 국력차이로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중 한 곳만 선택할 수도 없다.

다른 강대국과 적대국이 될 경우, 정치외교부터 경제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노릇인데, 사람들은 보이는 명분만 따라 외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 이번 위기를 타개하느냐다. 양국 간 기술전쟁에서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치‧외교적 대응부터 모색해야 한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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