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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배민 사려면 요기요 팔아라”…사실상 합병 불허, DH 결정 ‘촉각’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와 배달의민족(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간 기업결합이 조건부 승인됐다. 두 사업자간 결합은 허용됐지만 대신 DH가 소유한 요기요를 매각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업계는 사실상 ‘불허’ 조치로 보고 있지만, DH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DH가 우아한형제들의 지분 약 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결합 조건은 DH가 보유한 ‘DH코리아’ 지분 100%를 6개월 내 제3자에 매각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국내 배달앱 시장 1위 배달의민족과 2위 요기요가 합치면 이로 인한 경쟁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DH와 배민이 합병하면 ‘거래대금’ ‘음식점 수수료’ ‘이용 소비자수’ 등 지표에서 경쟁제한성 추정요건을 충족하게 된다. 공정위에 따르면 DH와 배민의 합계점유율은 지난해 거래금액 기준 99.2%로, 2위인 카카오 주문하기와의 격차는 25%p다. 또, 최근 쿠팡이츠의 점유율이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관련시장인 전국시장 기준 점유율은 아직 5% 미만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점을 들어 배민과 요기요가 합병할 경우 소비자 혜택 감소와 음식점 수수료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할인 프로모션 경쟁을 하던 유력한 경쟁자가 사라질 경우, 소비자에 대한 쿠폰 할인 프로모션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 공정위는 배민과 요기요가 상대방보다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주문 건당 쿠폰할인을 덜 제공한 사실을 확인하고 근거로 내세웠다.

이번 조건부 승인은 DH가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과 주식 취득 계약을 체결하고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를 한 지 1년만이다.

배달업계는 사실상 배민과 요기요 결합을 공정위가 불허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대신 두 사업자간 결합은 허용해 DH의 기술력과 배민의 마케팅 능력을 결합하는 등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길을 열어뒀다. 당초 DH는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추진하면서, 배민의 해외네트워크와 마케팅 노하우를 활용해 아시아 국가 중심의 글로벌 진출 구상을 밝혀왔다. 이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90%가 넘는 독점 사업자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명분을 가지고 판단이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DH 입장에서는 지금껏 운영해온 본사업을 시장에 경쟁자로 내어주고, 새로운 사업체를 인수하는 격이어서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DH가 요기요 지분 100% 매각이라는 공정위 조건을 수락하고 매각을 위한 절차를 밟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 이미 과반 점유율을 보유한 배민을 품에 안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DH 관계자는 “오늘 오후 공시를 통해 공식 입장을 전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벤처업계는 이번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에 대해 “국내 스타트업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라며 염려하는 분위기다. 스타트업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결정은 스타트업의 글로벌 가치 평가에 악영향을 끼치고 글로벌 진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디지털 경제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혁신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글로벌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하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미나 코스포 정책팀장은 “무려 11년 전 이베이가 국내 시장에서 G마켓과 옥션을 인수할 때는 디지털경제 역동성을 이유로 허용했던 공정위가 이번 건에 대해서는 경쟁제한성을 매우 보수적으로 판단했다”며 “앞으로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본사업을 접고 들어가야 한다는 우려가 커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권하영 기자>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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