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정부가 디지털 뉴딜을 발표하면서 데이터 활용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치솟았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펼침에 따라 국내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과 각종 혁신 서비스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잇단 개인정보 유출 논란으로 데이터 활용이라는 기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연초부터 정보기술(IT) 업계를 뜨겁게 달군 것은 스캐터랩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다. 20대 여대생을 의인화한 이루다라는 캐릭터가 사용자의 채팅에 반응해 답을 내놓는 형태의 서비스로 지난해 12월 출시 이후 큰 인기를 누렸다.
문제가 된 것은 여성을 의인화한 이루다를 대상으로 일부 이용자가 성희롱을 한다는 데서 시작됐다. 민감한 젠더 이슈로 부각됨에 따라 많은 눈길이 이루다를 향했고, 이루다가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거나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등의 ‘AI 윤리’ 이슈로 확산됐다.
여기까지는 AI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각종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기술, 기업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말아야 한다는 긍정론도 공존했다. 하지만 연이어 이루다가 이름, 주소, 계좌번호 등을 답하며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루다의 AI 학습에 활용된 것은 스캐터랩이 개발한 ‘연애의 과학’이라는 연애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데이터다. 연애의 과학에서 수집한 데이터가 적절한 비식별 조치를 거치지 않고 이루다에 그대로 학습됐고, 이것이 유출된 것.
여기에 더해 스캐터랩이 오픈소스 플랫폼 깃허브에 공유한 AI 학습용 카카오톡 대화에서 이름, 직장명 등 개인정보가 포함된 것이 확인되며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스캐터랩은 “연애의 과학 사용자 데이터는 사용자의 사전 동의가 이뤄진 범위 내에서 활용됐다”고 해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동의는 앱 초기 화면에 ‘로그인함으로써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취급방침에 동의합니다’라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용자가 동의/비동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고지 형태라는 점 ▲2명 이상의 카카오톡 대화를 1명에게만 동의받은 점 등이 문제로 떠오른다. 동의를 받았다고 해서 다른 앱 개발에 데이터를 사용해도 되느냐는 비판도 있다.
이루타 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14일 카카오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논란이 터졌다. 지도 서비스 ‘카카오맵’에서 개인 이용자의 ‘즐겨찾기 폴더’의 기본값을 ‘공개’로 설정함에 따라 이용자의 정보가 유출된 것.
카카오맵 즐겨찾기 폴더는 이용자가 관심 있는 장소의 목록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다. 본인 거주지나 직장, 자녀의 학교나 음식점 등을 저장할 수 있는데, 이것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일부 이용자는 성매매 업소 리스트 등 타인에게 공개되면 곤란한 곳이 노출되며 논란이 커졌다. 군부대의 이름과 위치마저도 공유됐다.
논란 초기 카카오는 “장소 정보는 이용자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정보”라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로 보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이 “장소 정보도 성격에 따라 개인정보로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커지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인정보위)가 15일 이슈에 대한 점검을 개시했다. 카카오는 즐겨찾기 폴더 기본설정을 ‘비공개’로 조치하라는 개인정보위의 요청을 수용해 비공개로 전환했다.
개인정보위는 스캐터랩과 카카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사건들이 개인정보 유출인지에 대한 판별과, 개인정보 유출이 맞다면 그에 상응하는 과징금 등의 처벌이 이뤄지게 된다.
IT 업계는 개인정보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별 이슈에 대한 처벌에 그치지 않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데이터 활용이라는 기조가 흔들릴 수준의 규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개인정보위를 비롯해 정부 관계자도 당혹스러운 눈치다. 산업 육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와중에 발생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공공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은 산업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를 도외시할 수도 없다. 산업 발전을 이유로 유야무야 넘어가기에는 사태가 지나치게 커진 데다 안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데이터 활용’을 강조하던 개인정보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