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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유망기업탐방] 나노종기원, '한국형 IMEC' 꿈꾼다…PR 국산화 총력

김도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해외의존도가 높다. 지난 10여년 줄곧 지적했던 문제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의 약점을 부각했다. <디지털데일리>는 소부장 육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 유망기업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기업이 있지만 국내 반도체 인프라 수준은 이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벨기에 IMEC을 비롯해 프랑스 레티, 대만 NDL, 싱가포르 IME 등 해외에는 전문 반도체 연구소가 있는데 우리는 내세울 만한 기관이 없다. 한국도 반도체 연구개발(R&D)을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마련돼야 한다.”

반도체 업체와 학계에서 꾸준히 지적된 문제다. 반도체 연구를 위해서는 주요 장비들 확보가 필수적인데 대학 또는 중소기업이 구매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1대당 가격이 수십억~수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마저 생산용 장비 운용이 빡빡해 별도의 테스트용 장비를 두기 쉽지 않다.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시장 1위 TSMC도 NDL과 신공정 개발 등 핵심 연구를 진행한다.

최근 국내 반도체 업계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소식이 전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나노종합기술원(이하 나노종기원)이 지난 3월부터 12인치(300mm) 반도체 테스트베드 운영을 시작했다. 이곳은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반도체 분야 분석 서비스, R&D 지원, 전문인력 양성 등의 역할을 한다.

지난달 22일 대전 나노종기원에서 만난 관계자는 “한국형 IMEC을 목표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며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8인치에 이어 12인치 서비스를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IMEC은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다. 약 30년 전 설립돼 양과 질에서 최고 수준을 확보했다. 협업하지 않은 반도체 기업이 없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나노종기원이 IMEC을 롤모델로 삼은 이유다.
그동안 나노종기원은 8인치(200mm) 반도체 장비만 보유하고 있었다. 12인치로 전환한 국내 기업의 웨이퍼 소재 균일도, 결함 등 완성도 평가 수요에 대응할 수 없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일본 수출규제 이후 나노종기원 반도체 소부장 12인치 테스트베드 운영 기관으로 지정했다. 이후 나노종기원은 450억원을 지원받아 전용 시설과 장비를 구축했다. 작년 3분기 팹 환경 측정 및 시운전에 돌입해 올해 1분기 서비스 개시에 이르렀다.

▲네덜란드 ASML ‘불화아르곤(ArF) 이머전 스캐너’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오토 트랙 시스템’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멀티 챔버 화학기상증착(PEVCD) 장비’ ▲한국 피에스케이 ‘포토레지스트(PR) 스트립 장비’ ▲미국 램리서치 ‘드라이 에처’ 등이 12인치 테스트베드에 들어섰다.

이 중 ArF 이머전 스캐너는 삼성전자가 생산라인에서 사용하던 장비다. 나노종기원은 지난해 삼성전자와 장비구매 계약을 맺었고 ASML로부터 개조 및 수리를 받았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ASML이 고객사 사이트에서 리퍼비시를 해줬다. 이곳에서 모듈별 분류해서 조립했다”며 “네덜란드에 보냈으면 6개월~1년 더 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장비는 40나노미터(nm) 내외 반도체까지 처리할 수 있다. 향후 20nm급을 지원할 수 있도록 추가 장비 확보와 공정기술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초기에는 PR 국산화 작업에 집중할 방침이다. 감광제로도 불리는 PR을 노광 공정 핵심소재다. 이를 웨이퍼 바르고 포토마스크에 그려진 회로대로 빛을 쬐면 패턴이 형성된다.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하나로 일본의존도가 높은 제품이다.

업체에서 PR 평가를 맡기면 소재 수령 - 패턴 형성 - 임계 치수(CD) 측정 등의 단계를 거친다. 의뢰처에서 제공하는 PR과 공정조건을 기준으로 패턴을 제작한 뒤 트랙 시스템으로 웨이퍼에 도포해 두께, 균일도, 결함 등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동진쎄미켐 영창케미컬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 등이 의뢰하고 있다”며 “일부 내재화가 이뤄졌지만 일본 대비 아직 부족하다. 품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동진쎄미켐이 작년 말부터 ArF PR을 삼성전자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8인치 관련 문의도 급증하는 추세다. 전력관리 칩(PMIC), 이미지센서,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난에 시달릴 만큼 수요가 폭발한 영향이다. 8인치 테스트베드에는 불화크립톤(KrF) 스캐너, 화학기계연마(CMP) 장비, 식각 및 증착기 등 주요 공정 장비가 포진돼 있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작년에 1만6000건의 주문을 받았다. 올해는 12인치 가동과 8인치 수요 증가로 1만8000~2만건 정도로 늘어날 저망”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 센서, 바이오 등 분야도 다루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개발 및 상용화 지원’ ‘반도체 공정기반 나노메디컬 디바이스 개발’ ‘사물인터넷(IoT) 센서 신뢰성 및 제품화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구조적인 한계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장비 관련 비용은 정부가 지원하지만 인건비, 시설운영비 등은 자체 충당해야 한다. 서비스 이용료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전했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다 보니 대학교와 연구소 등의 요구 조건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지적도 있다.

규모를 늘리기도 어렵다. KAIST 안에 잔여 부지가 부족하고 새롭게 구축하려면 조단위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탓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안 모색이 불가피하다.

한편 나노종기원은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작년 나노종기원이 이공계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나노전문인력양성 및 일자리지원사업’에 80명이 참여해 62명이 나노융합분야 기업에 취업했다. 나노종기원 관계자는 “경쟁률이 과거 5대1에서 올해 1분기는 25대1까지 올랐다. 생산라인에서 실제로 쓰이는 장비를 다뤄본 경험이 큰 도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도현 기자>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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