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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ESG 바람, 그러나 현장에서 느껴지는 생경함

강민혜

[디지털데일리 강민혜 기자] “ESG의 정확한 정의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난 18일 업무차 만난 유통업계 홍보 관계자 A씨의 질문엔 기업의 최근 고민이 엿보였다. A씨는 사내 홍보 업무를 하면서 보도자료 ‘ESG’를 붙이는 게 현재 홍보 담당자들의 유행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비(非)재무구조 평가 기준이 뭔지 명확하게 공유된 게 없으므로 언론 보도 횟수라도 늘려 긍정 평가를 받으려는 마음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했다. A씨는 해당 업계 매출 1위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다른 유통업계 홍보 담당자 B씨도 “ESG는 전사 차원서 노력하고 있는 주제지만 아직 구체화된 참고 지표를 공유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내부에 존재하던 조직을 ESG 관련 기구로 바꾸려고 하고는 있지만 급선무는 아니라고 했다. 그 역시 디지털 혁신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모 대기업에 근무한다. 디지털 혁신 역시 ESG 평가 항목에 들어가지만 그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국내 굴지의 건설 업계 대기업 홍보 담당자 C씨는 “국내외 지표를 고루 참고한다”고 말했다. 정책 설정시 전사 차원서 통일된 지표를 참고하도록 하달한다. 다만 각 부문 홍보 담당자들이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C씨는 자신들의 참고용 평가 지표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

또 다른 건설 업계 담당자 D씨는 “사내 ESG 관련 가치 설정에 일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허울좋은 이름은 있지만 실제 기업들이 평가받는 지표가 통일돼 있지 않아 어디의 자료를 사용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해 나갈지 연구할 때 일부 혼선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사내에선 관심은 있으나 적극 추진을 미루는 이유란다.

그가 꼽은 ESG의 문제점 역시 비재무 평가 지표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평가 지표를 스스로 만들어 기업을 평가하는 언론사를 포함해, 이런 저런 기관 들이 우후죽순 늘어나자 눈치볼 곳만 늘었다는 불평도 나온다.

수치 환산은 어렵지만 ESG 관련 평가 지표 대응을 준비하고 내부 거버넌스 구조를 바꾸면서 많은 기회비용도 들어간다. ▲내부 보안 ▲재무 ▲인사 ▲명패 ▲부서명 관련 비품 교환부터 원자재 친환경화를 위한 공장 설비 증설이나 기술 개발 등 R&D 비용까지 새로 준비해야 하는 항목들이다.

대한상의·경제인총연합회에서 기업의 입장을 대변, 이들의 ESG 관련 원하는 지표 설정을 취합해 정부에 전달하고는 있다. 하지만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일부 소수에 국한되었다는 게 관련 담당자들의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혼선을 겪는 일선 담당자들을 위해 ESG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취합, 올 하반기 내로 참고할 만한 공신력 있는 이른바 ‘K-ESG 지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부 주도로 평가하는 지표를 내세우겠다는 것은 아니고 현장의 혼란을 없애고 각 업계의 역량 강화, 관련 오해 불식 등을 돕는다. 일부 기업이 우려하는 줄세우기 등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비재무구조 평가는 해외에선 이뤄지고 있다. ESG 평가사 관계자 E씨는 “일선 담당자들의 혼선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한다.

현재 국내 많은 기업들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국외 DJSI(다우존슨지속가능경영지수)·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등의 평가 지표를 참고한다. 기관별로 ESG를 평가하는 철학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평가 지표가 늘어나면 기업들의 그에 대한 대응 수고도 늘어난다. 해외 평가 기관이 다수 존재하고 국내 신용평가사 등도 ESG 지표 마련에 나선 상황이라 지표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평가기관이 많아지는 것이 좋은 생태계를 마련하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정답은 없다. 사람, 기관, 투자자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물론 평가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것은 기업의 미래도 보장되는 일이다.

지속가능성으로 대변되던 가치에 평가지표를 넣음으로써 기업의 단순 매출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끼친 좋은 영향까지 측정,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방법인 셈이다.

수고스럽지만, 좋게 생각하면 이는 기업이 극복해 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는 아닐까.

세계적 IT 기업들은 이미 ESG로 소비자의 감성을 깊게 파고들고 있다. 구글은 인공지능으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고 자사의 ESG 전략을 설명한다. 스타벅스는 공정무역 보장과 블록체인 활용 커피 원두 생산·유통 이력 조회 서비스 ‘빈투컵(Bean to Cup)’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015년부터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하는 해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밖에도 기업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다양화, 이들의 안전과 복지, 신규 사업 기회 발굴 등에 ESG를 활용하는 기업도 존재한다.

유통업계 관계자 F씨는 ESG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업의 미래 전략은 결국 윤리성 추구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 구미 변화도 빠릅니다. ESG는 외부로부터 기업 내부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변화가 더딘 기업이라면 ESG 유행으로 내부의 전략을 한번쯤 고민해볼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민혜 기자> minera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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