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DD 인사이트] 우리에게 본질적인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끝나지 않은 美‧中 갈등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논설실장]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붕괴(崩壞)로 인한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EU 등 경제력을 가진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 전략으로 전환함에 따라 시장 수요가 살아나고 있는데, 정작 제때에 물품이 원활하게 조달되지 못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같은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bottleneck) 현상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처럼 다국적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국가에서 아직 코로나19로 인한 공장 셧다운이 지속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다만 이는 그 자체로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다시 정상화되는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사진>해양수산부
<사진>해양수산부

현재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글로벌 공급망’ 왜곡이다. 코로나19의 종식과 무관하게, 우리에게 글로벌 공급망의 정상화를 위협하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따로 존재한다. 지난 수년간 증폭돼온 미‧중 갈등이 그것이다.

두 나라의 군사력이 집결된 남중국해는 이미 세계의 화약고다. 군사적 충돌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그동안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왔던 중국에게 더 이상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도 가정해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않은 시나리오다. 이미 중국이 글로벌 산업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너무 커져버린데다 중국 시장 자체가 가진 엄청난 구매력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기도하지만 동시에 전세계 물건을 빨아들이는 글로벌 시장의 ‘큰 손’이기도 하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2.3%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했고, 올해는 7%대로 추산된다.

만약 중국의 구매력이 급격히 사라지면, 이는 글로벌 시장이 또 다른 진공 상태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에도 후폭풍이 될 수 있고, 미국 기업들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지난 21일 발표한 ‘2018 미-중 무역전쟁 이후 세계교역 변화와 과제’라는 보고서를 보면, 그동안 두 나라의 무역 전쟁이 결과적으로 실익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 시절,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통해 對중 무역적자를 2018년 4,176억 달러에서 2020년 3,108억 달러로 약 1,000억 달러 이상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지난 해 미국은 예상치못했던 코로나19로 인해, 전년대비 무역량이 13%나 감소했고, 그 결과 미국의 연간 무역적자는 9,05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물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코로나19 상황과 겹쳐져 심각한 경제 충격으로 이어졌다.

다만 최근의 흐름은 양국이 무역 전쟁에서 한 발씩 물러나는 모습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올해 상반기 중국의 대(對)미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26.7% 증가했다. 또 같은 기간 미국의 대(對)중국 수출도 55.0% 증가했다.

여타 교역국가들과 비교해 두 나라간의 무역량 회복율이 가장 빠르다는 게 눈에 띤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이다. 경기침체를 타개하기위해 미·중 양국은 밉더라도 서로의 막강한 구매력을 필요로 한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G2의 갈등은 국방, 경제 여러 방면에서 매우 민감한 양면성을 가진다. 따라서 G2가 ‘적대적 공생’관계지만 당장은 서로에게 필요한 ‘공생’(共生)에 방점을 찍는다면 불확실성이 더 커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현재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파운드리 업체 SMIC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지난 몇개월간 수출 허가를 내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 측면에선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신호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에게 610억달러(약 71조원)규모의 수출 허가 113건, 또 SMIC에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에는 420억달러(약 49조원) 규모의 수출 허가 188건을 허가했다.

앞서 미국은 트럼프 정권 시절인 지난 2019년 5월 중국 화웨이를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미국 기업이 화웨이에 부품 등을 공급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로 인해 화웨이는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을 빚어 올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5위권(지난해 1위) 밖으로 급격하게 추락했다.

그러나 이를 뒤짚어 본다면, 그동안 미국의 기업들도 자국의 무역 블랙리스트 때문에 중국 화웨이, SMIC 두 회사에 1000억 달러(한화 약 120조원) 규모의 막대한 수출을 할 기회가 아예 막혀 버렸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화웨이도 추락을 했지만 전체 글로벌 공급망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에게 물건을 파는 미국 기업들도 동시에 위기였던 셈이다.

바이든 정부가 왜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들에게 부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자국 기업에 수출 허가를 내줬는지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이 실익이 없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포석일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우리 주요 IT기업들에도 지난 몇년간 미‧중 갈등은 고려해야 할 매우 중요한 시장 변수였다. 기회와 우려의 시각이 시장에는 혼재했다. 하지만 우리 IT산업에 있어 미‧중 갈등은 악재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전경련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한 2018년과 비교해 2020년 미국과 중국 수입시장에서 아세안 국가의 점유율은 2.6%포인트 증가한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0.3%포인트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미‧중 무역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아세안 국가들 보다 컷고, 이 때문에 우리 기업들에게 타격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우리 IT기업들에게 이러한 외부 변수에 의한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유일한 카드는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 경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 밖에 없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최상단에 올라서는 것만이 어떠한 형태의 ‘글로벌 공급망 왜곡’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별개로, 미·중 갈등의 전개를 앞으로도 깊게 주시해야하는 이유다.

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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