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과거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 하청 정도로 여겨졌으나 갑을 관계가 뒤바뀐 분위기다. 대만 TSMC를 비롯한 전 세계 파운드리 기업은 생산능력(캐파) 확대를 통해 시장 수요에 대응 중이다.
15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1년 파운드리 ‘톱10’ 연간 매출은 1000억달러(약 118조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전년대비 20%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2022년에는 올해보다 13.3% 오른 1177억달러(약 139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파운드리 몸값 천정부지=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 업체가 고객사를 가려서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수주 경쟁이 아니라 주문 경쟁 체제”라며 “일례로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가 중소 파운드리에 칩 생산을 위탁했으나 라인 풀가동을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은 파운드리에 긍정적이다. 애가 타는 건 팹리스 업계다. 수요공급 불균형이 이어지자 파운드리는 제조단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 시발점은 대만이다. 중상위 파운드리 UMC VIS 등이 작년부터 분기마다 10~20% 비용을 올린 데 이어 1위 TSMC마저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TSMC는 올해 하반기 들어 첨단공정은 20%, 중저가 제품은 15% 내외 인상률을 적용했다.
내년에도 상승 랠리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UMC는 2022년 1분기부터 파운드리 견적을 10% 상향 조절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등도 동참했다.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영업이익에서 드러난다.
수익성 확대로 파운드리 업계는 ‘꿈의 영업이익률’에 도달한 상태다. TSMC는 지난 3분기 41.2%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국내 2위 파운드리 DB하이텍은 영업이익률 36%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성장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너도나도 생산량 늘린다=주요 업체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기’에 나섰다. 자금 지원을 받아 공장을 세울 만큼 국가별 유치전도 치열하다. TSMC는 자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에 신규 팹을 짓기로 했다. 앞서 미국 애리조나 공장을 착공했고 최근에는 일본 소니와 손잡았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등 캐파를 증대한 가운데 미국 증설을 앞두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4일 북미 출장길에 오른 만큼 조만간 투자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입할 방침이다.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든 인텔도 광폭행보를 보인다. 애리조나에 200억달러(약 24조원)를 들여 2개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유럽 등지에도 공장 구축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마련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중국 SMIC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정부로부터 조단위 투자를 받아냈다. 반도체 굴기 선봉장으로 양과 질 모두 높이겠다는 의지다.
DB하이텍은 올해 들어 월 9000장 내외 캐파 증대를 진행했다. 월 생산량이 웨이퍼 기준 13만8000장으로 몸집이 커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키파운드리를 인수하기로 했다. 계약 완료 시 단숨에 국내 2위, 세계 10위권 업체로 도약하게 된다. 기존 중국 우시 사업장 캐파도 점진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오는 2023~2024년까지 파운드리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라면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 산업 성장으로 필요한 반도체량이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