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우리나라의 2021년 연간 수출액은 6444억달러(약 773조원)로 추산됩니다. 사상 최고 수준이죠. 이중 반도체는 1280억달러(약 153조원)로 20% 내외를 차지하면서 신기록을 견인했습니다. 반도체 역시 역대 최대를 달성했습니다.

반도체는 수년 연속 한국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러한 추세는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존재 덕분이죠.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 연간 매출이 94조원을 넘어서면서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했습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부상한 데는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의 ‘도쿄선언’이 시발점으로 작용했습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미국 기업 자회사의 반도체 단순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삼성전자가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으나 몇 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죠.

이 선대회장은 제대로 반도체 사업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중대 발표를 합니다. 그는 일본 출장 중이던 1983년 2월8일 중앙알보 홍진기 회장에 전화를 걸어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다.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한 달 뒤 삼성그룹은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언문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국내외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은 ‘한국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칼럼을 내놓으면서 코웃음 쳤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재계에서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빈국을 겨우 벗어난 나라에서 첨단 산업에 뛰어드는 건 불가능한 도박에 가깝다는 이유에서였죠.

냉담한 반응 속에도 삼성전자는 같은해 5월부터 64K D램 개발에 착수합니다. 6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하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냈죠. 일본이 6년 이상 걸렸던 걸 반년 만에 이뤄내면서 기술 격차를 10년에서 4년 내외로 줄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경기 기흥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등 사업을 본격화합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미국 유학을 떠난 반도체 연구원들을 연달아 영입합니다. 권오현 진대제 등 삼성 반도체 부흥을 이끈 인물이 합류한 시기죠.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면서 일본을 앞지르게 됩니다.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 등도 선점하면서 시장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기술력은 물론 고객 수요를 정확히 파악한 점도 주효했습니다. 일본 업체가 품질에만 신경을 썼다면 삼성전자는 적당한 성능에 원가경쟁력을 앞세운 것이죠. 치킨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향후 삼성전자는 플래시 메모리 시장이 열리는 상황에서 노어플래시를 채택한 인텔 등과 달리 낸드플래시를 선택하면서 또 한 번의 성공을 일궈냅니다. 그 결과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면서 SK하이닉스와 함께 메모리 업계를 이끌고 있죠.

SK하이닉스와 차별점은 메모리에만 치중하지 않은 부분인데요. 삼성전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스템LSI 사업도 시작했죠. 1994년 디지털시그널프로세서(DSP)를 국내 최초 개발한 것을 계기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이미지센서 등도 만들게 됐습니다. 이미지센서의 경우 세계 최초로 2억화소 제품을 공개하면서 초격차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분야도 강화합니다. 설계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고객사를 유치하기 위해 독자 사업부 체제로 전환했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도 1위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냅니다. 현재는 경기 화성과 평택에 차세대 노광 극자외선(EUV) 장비를 투입하고 미국 신공장 구축을 확정하는 등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