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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월트 디즈니’ 꿈꿨던 넥슨 김정주, 영면에 들다(종합)

왕진화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이사, 지난달 말 별세
-“살아생전 우울증 치료 받아와…최근 악화된 듯”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한국의 ‘월트 디즈니’를 꿈꿔왔던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엔엑스씨 이사가 영면에 들었다. 향년 54세.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엔엑스씨(NXC) 이사는 1991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서 학사학위,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과에서 석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김정주 이사는 1994년 12월 넥슨을 창업하면서 대표 게임인 ‘바람의나라’를 개발했다. 이후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크레이지아케이드’ ‘메이플스토리’ 등 다양한 게임을 성공시켰다. 이들 게임 성공으로 넥슨은 국내 대형 게임사로 발빠르게 올라섰다.

김 이사는 2005년 6월 넥슨 최고경영자(CEO)로 나서기 전까지 약 10여년간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는 특이한 면모를 보이며 ‘은둔형 경영자’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넥슨 CEO 취임 이후 불과 얼마 되지 않은 2006년 11월, 넥슨 지주사 NXC(구 넥슨홀딩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NXC는 2005년 설립된 글로벌 투자회사로, 일본에 상장한 넥슨의 모기업이다. 평소 김정주 NXC 이사는 넥슨을 ‘월트 디즈니’처럼 만들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왔다. 게임 캐릭터와 스토리 등 넥슨 지식재산(IP)을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였다.

김 이사는 넥슨의 창업 과정을 다룬 자서전 ‘플레이’라는 책을 통해 “디즈니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회사”라며 “100분의 1이라도 따라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넥슨을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투자 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차세대 콘텐츠 제작 기반을 다지기 위한 투자를 비롯해, 영화 제작사 AGBO 투자까지 최근 투자 행보로 밝혀진 것만 해도 수백억원에 이른다. 비트코인이나 국내외 가상자산 거래소,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까지 비게임 분야로의 투자 활동도 마찬가지다.

또, 김정주 이사는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회와 공존하고 동행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먼저 2013년 아시아 최초의 컴퓨터박물관인 ‘넥슨컴퓨터박물관’을 제주에 열었다. 김 이사는 당시 “컴퓨터가 세상 모든 분야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곳”이라며 “컴퓨터가 앞으로 어떤 발전을 이끌어갈지 모두가 모여 고민하는 장소가 됐으면 한다”고 박물관 설립 취지를 밝혔다.

(사진 왼쪽) 김정주 엔엑스씨 이사.
(사진 왼쪽) 김정주 엔엑스씨 이사.
박물관을 선보인 같은 해, 국내 최초 아동 재활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기부에 힘쓰기도 했다. 2016년 병원이 개원하기까지 꾸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이사는 본격 기부 활동을 위해 2018년 넥슨재단을 설립했다. 전국 장애 아동이 보다 원활하게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적극 찾아선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에 소아 병동의 중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지난 2019년 2월 국내 최초 대전시 소재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에 건립 기금 100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넥슨은 중증 장애 아동과 가족을 위한 지원도 확대한 바 있다. 넥슨은 지난 2020년 10월 국내 최초 독립형 어린이 완화의료센터 ‘서울대학교병원 넥슨어린이완화의료센터(가칭)’ 건립에도 동참하며 100억원 기부를 약정했다. 김정주 이사는 2021년 11월 경남권 어린이재활병원을 위한 100억원 후원에도 나섰다.

김 이사는 지난해 7월 NXC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김 이사는 “지주회사 전환 후 16년 동안 NXC 대표이사를 맡아왔는데, 이제는 역량 있는 다음 주자에게 맡길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며 “저는 보다 자유로운 위치에서 넥슨컴퍼니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런 그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에서 별세했다. NXC는 “유가족 모두 황망한 상황이라 자세히 설명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며 “고인은 이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 악화한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용히 고인을 보내드리려 하는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내 빈소 마련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인 유정현씨와 두 딸이 있다.

지난 1월 넥슨이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 감독 루소 형제와 프로듀서 마이크 라로카가 설립한 AGBO 스튜디오에 4억달러(약 4800억원) 규모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은 ‘넥슨 판 엔드게임’을 기대해왔다. 그런 와중에 김정주 이사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은 IT업계 및 대중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는 영면에 들었지만, 그의 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왕진화
wjh9080@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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