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중국용 고성능칩 ‘A800’의 미스터리… 美-中, 정말 싸우는거 맞나

박기록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지난 16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반도체 대표기업 엔비디아의 3분기 실적에선 몇가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시장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과연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어느정도 매출 타격을 입었을까'에 주목할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지난 8월초, 미국 상무부는 ‘군사 목적 전용 가능성’을 명분으로 미국산 고성능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 규제를 발표한 바 있다.

가장 직격탄을 맺은 업체가 고성능 GPU인 ‘A100’을 생산하는 엔비디아였다. 엔비디비아는 조치전까지 중국 데이터센터 칩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이 규제로 분기당 약 4억 달러의 중국 매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았고, 실제로 뉴욕의 월가도 이를 우려했었다.

하지만 3분기 뚜껑을 열어본 결과,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엔비디아의 3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7% 줄어든 59억3000만달러로 위축되긴했지만 시장 전망치 57억9000만달러 보다는 양호했다.

히 게임 시장의 침체, 암호화폐 하락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 시장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칩 매출은 오히려 전년동기대비 31%나 증가하는 호조를 보였다.

물론 엔비디아는 3분기 실적 발표 며칠전, 기존의 ‘A100’과 ‘H100’이 아닌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 범위에 저촉되지 않는 ‘A800’이라는 저사양의 중국용 데이터센터 칩을 만들어 수출했다는 사실을 깜짝 공개한 바 있다.

‘A800’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를 피하기위해 데이터 전송속도를 초당 400기가바이트(GB)로 낮춘 것으로, ‘A100’의 초당 600GB보다 성능이 느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엔비디아는 ‘A100’의 대체품인 ‘A800’을 수출함으로써 중국 매출 타격을 최소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의문 두 가지가 나온다.
◆‘A800’ 실제 성능, 결코 저사양이 아니다?

첫째는 ‘A800’의 실제 성능에 대한 것이다. 엔비디아측은 ‘A100’에 비해 명백한 저사양이라고했지만 이번 실적에 나타났듯이 결과적으로 중국은 군말(?)없이 이를 적지않은 규모로 수입했다는 점이다.

바꿔말하면 중국 입장에선 ‘A800’로 기존 ‘A100’을 충분히 대체했다는 것이며, 두 칩의 성능 격차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소기의 목적대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A800’의 성능이 정말로 기존 ‘A100’보다 현격히 떨어졌다면 중국은 현지 GPU 제품으로 대체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중국 시장에 엔비디아의 ‘A100’을 대체할 제품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앞서 미국의 고성능 AI반도체 수출 규제 조치 발표 당시, 상하이의 ‘바이렌 테크놀로지’(Biren Technology) 등 중국 반도체기업이 개발한 범용 GPU가 엔비디아를 대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알리바바와 엔비디아 엔지니어 출신자들로 구성된 바이렌은 실제로 올해 8월 범용GPU인 ‘BR100’(사진)을 선보인 바 있다.

따라서 ‘A800’ 수출이 상당부문 이뤄졌다는 것은 ‘A800’의 성능이 예상보다 좋으며, 기존 미국 정부가 규제한 고사양 반도체 스펙과는 무관하게 중국측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추론을 갖게한다.

물론 다른 해석도 있다.

당장 엔비디아의 ‘A100’을 중국산으로 대체하기에는 공급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A800’이라도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애널리틱스 등 일부 기술전문 미디어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는 중국의 고성능 AI반도체 독자 개발 의지를 더욱 앞당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A800’의 효용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라는 견해다.
2022.11.14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우)과 시진핑 중국 주석(좌)
2022.11.14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우)과 시진핑 중국 주석(좌)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의 진정성? 실효성?

두 번째 드는 의문은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정책에 대한 진정성과 실효성이다.

업계 일각에선 ‘A800’이 기존 ‘A100’보다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중국이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기존과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를들면 ‘A800’칩 수를 늘림으로써 기존의 컴퓨팅 성능을 얼마든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과연 몰랐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규제 정책의 목적은 ‘군사용으로 전용’ 차단과 함께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은 저사양 반도체와 장비를 통해서도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반도체 관련 전문가들과 기술 전문 매체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전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미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발을 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의 입장에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싶지만 동시에 시장은 잃고 싶지 않은 모순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최근 미국은 고성능 반도체 규제에 이어 반도체 장비까지 규제의 범위를 넓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0월7일에는 ▲18나노미터(n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구조 또는 16·14nm 이하 로직칩 등 수출 통제 품목은 허가 없이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안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기업 뿐만 아니라 EUV 노광장비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의 ASML 등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들에도 대 중국 반도체 압박에 동참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ASML은 미국의 요구에 부정적이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5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수출 규제는 미국 제품·서비스에 적용하는 내용”이라며 중국 수출 방침을 시사했다. ASML 뿐만 아니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피니온 등 유럽의 반도체 기업들도 중국 사업과 관련해 미국과 보조를 함께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결국 엔비디아의 올 3분기 실적에서 나타난 중국용 칩 ‘A800’의 매출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규제에 대한 진정성과 실효성을 역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현재로선 ‘스펙 다운’ 규제만으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겠다는 전략은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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