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정책점검]③ 미국·일본은 앞서 있다? 정말 그럴까
정부가 통신사업자에 할당된 5G 주파수를 회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해 5G 28㎓ 주파수 할당 취소를 결정했고, SK텔레콤에 대해선 주파수 이용기간 단축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LTE보다 20배 빠른 ‘진짜 5G’로 알려진 28㎓ 대역은 향후 메타버스와 자율주행 등 미래 사업에 필수적인 만큼,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전례 없는 주파수 회수 사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이것이 이용자와 생태계에 미칠 영향까지 전망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정부가 통신사업자에 대해 5G 28기가헤르츠(㎓) 대역 주파수 할당 취소라는 초강수를 둔 가운데 해당 대역의 해외 활용사례를 두고 정부와 통신3사의 의견이 엇갈린다.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현황을 들며 대역에 대한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투자가 부족하다는 입장인 반면, 통신3사는 전 세계적으로 해당 대역의 활용사례가 많지 않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최근 진행된 5G 현장점검 브리핑에서 미국·일본 등 해외 국가에선 28㎓ 대역이 이미 활용되고 있으며, 활용을 계획 중이라고 밝힌 국가도 33개국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8㎓ 대역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통신사업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과기정통부 홍진배 네트워크 정책실장은 특히,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며 “미국과 일본의 경우 5G 28㎓ 기지국을 각각 3만5000국, 2만2000국씩 이미 구축했다. (5G 정책 실패는) 투자비를 아끼려는 통신사업자들의 노력들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실제 28㎓ 대역의 이용 현황은 어떠할까. 업계에 따르면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5G 서비스에는 6㎓ 이하의 서브식스 대역 주파수가 사용되는 추세다.
28㎓와 같은 밀리미터파(초고주파·mmWave)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파의 도달거리가 짧고, 회절성(장애물을 피해가는 특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잘 안 터진다. 커버리지도 3.5㎓ 대역과 비교해 10~1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3.5㎓와 같은 커버지리를 제공하려면 기지국을 더 촘촘하게 깔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업자들은 현재로선 5G 28㎓ 대역에 투자할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28㎓ 대역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서비스와 단말이 먼저 받쳐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가 28㎓ 대역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한 미국과 일본의 경우, 28㎓ 기지국을 각각 경기장과 대리점을 중심으로 설치할 것으로 업계로부터 전해진다. 미국과 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기지국 의무구축 수량 등의 조건을 부여하고 정부가 주파수를 할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의 경우 경기장에서 5G 28㎓ 대역을 활용해 가상게임·경기에 대한 멀티뷰(Multi-View) 등의 실감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이미 국내에서도 제공되고 있는 서비스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당시 시부야 거리에 28㎓ 기지국을 집중 구축한 가운데 통신사의 측정 결과 기지국으로부터 100m 거리에 위치한 건물은 입구에서부터 연결이 끊기는 등 서비스 품질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이 5G 28㎓ 기지국을 각각 3만5000국, 2만2000국씩 구축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영토면적을 고려하면 한국과 비교해 많은 수의 기지국을 구축한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28㎓의 경우 전파의 도달거리가 짧다보니 더 많은 기지국 구축이 요구된다. 이에 주로 인구 밀집 지역(핫스팟)에 구축된다”라며 “미국과 일본이 각각 경기장과 대리점에 기지국을 구축했다는 것은 깔긴 깔아야 하는데 구축할 만한 장소가 그만큼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28㎓ 대역을 먼저 할당한 뒤 서브식스 대역을 내놨기 때문에 28㎓ 대역을 활용한 5G 서비스를 먼저 선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8㎓ 대역 서비스를 적극 추진했던 미국 최대 이통사 버라이즌도 결국 서브식스 주파수 확보에 455억달러(약 60조6424억원)를 썼다”며 “28㎓ 대역 서비스를 위해 58분 차이로 세계 최초 타이틀을 한국에 내준 버라이즌이 28㎓를 포기하고 다시 서브식스 대역을 샀다는 부분에 우리는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같은 시장을 보고도 정부는 5G 28㎓ 대역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신사업자는 유보를 결단한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28㎓ 대역을 둘러싼 정부와 통신사 간 갈등은, 지난 8월 작성된 미국출장 보고서에서부터 예고됐다. 당시 과기정통부와 통신3사 관계자는 5G 서비스 현황 파악을 위해 미국을 방문, 미국 주요 통신사인 T모바일(T-mobile)과 버라이즌(Verizon) 등과 기업 미팅을 가졌다.
디지털데일리가 입수한 과기정통부와 통신3사의 출장보고서에 따르면 양측은 같은 미팅을 가진 뒤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먼저, 양측은 미국 주요 통신사의 밀리미터파 대역 계획에서 엇갈린 입장을 내비쳤다. 보고서에서 과기정통부는 버라이즌이 밀리미터파를 포기한 것이 아닌 미국 전역에 4만5000개의 노드(1개 기지국이 담당하는 서비스 구역 최소 단위)를 구축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에 주목한 반면, 통신사는 밀리미터파 투자계획은 확인 불가하며 현재 중대역(C-band) 확보를 위한 막대한 주파수 비용 지불, 투자계획 등을 고려했을 때 당분간은 중대역 중심의 투자가 진행될 것이라고 봤다.
양측이 보고서에서 제시한 미국 내 28㎓ 대역 5G망 가용률(28㎓ 대역 5G망에 연결될 확률)의 수치도 크게 차이났다. 통신사업자들은 보고서에 오픈시그널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측정한 결과를 인용한 가운데 버라이즌·T모바일·AT&T의 밀리미터파 망가용률은 모두 0.5% 이하였다고 밝혔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5G 망가용률을 직접 측정, 옥외 기준 57.81% 실내 기준 82.76%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와 통신사업자 간 견해 차이가, 결국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문제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네트워크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관련한 서비스와 콘텐츠의 생산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보지만, 통신사업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하지만 일각에선 서브식스 대역과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의 투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네트워크를 고도화시켜 콘텐츠 수요를 유발하는 상황은 사업자들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정부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용희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서비스가 만들어지면 망 까는 것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망에 투자하지 못할 정도로 자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통신사가 투자를 못하는 것은 28㎓ 대역을 활용한 5G 서비스를 만들어도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업자의 입장에선 28㎓ 기지국을 구축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28㎓의 활성화를 뒷받침할 콘텐츠도 없고 디바이스도 없다”라며 “정부의 요구가 부당하지는 않지만 기업 입장에서 수익을 포기하고 주주들에게 도전받으면서까지 대규모로 투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구체화됐을 때 본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기다림도 필요할 것 같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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