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⑮] 게임사 ‘AI 형설지공’ 열전…“저비용 고효율 개발 속도”
[창간18주년 대기획] ‘AI 트랜스포메이션을 준비하라(Beyond AI)’
[디지털데일리 오병훈 기자] 국내 게임사들이 보릿고개를 넘는 중에도 인공지능(AI)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매출이 줄었음에도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오히려 높이면서, AI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게임 개발 프로세스에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될 경우,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게임 개발 작업에서 효과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주요 게임사들은 최근 몇 년간 산하 AI 개발 부서나 연구소를 설치해 AI를 활용한 게임 그래픽 작업이나 서비스 품질 관리 자동화 등 실질적으로 개발 비용 및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게임 개발 실무진 사이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 그래픽 업무에서는 상당 부분을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 내다보는 분위기가 감돈다. 게임업계에서 개발자 인건비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게임사들은 AI를 통한 비용 절감을 경험할수록 인력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는 AI 발달에 따라 향후 몇 년 내 게임업계 신입급 인력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넷마블·엔씨 “보릿고개지만, 연구개발엔 안 아낀다”=넷마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 따르면, 넷마블 매출은 602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연구개발비용은 1733억원 지출했다. 연구개발비 총액은 전년동기대비 2.1% 줄었으나, 매출 대비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5.5%포인트(p) 늘어난 28.8%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넷마블은 연구개발비용을 줄이지 않았다. 지난해 넷마블 연간 연구개발비용은 8580억원으로 전년 대비 52.7% 상승했다.
넷마블은 지난 2018년 연구 전담 조직 AI센터를 설립한 이후 AI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넷마블AI센터는 ‘콜롬버스실’과 ‘마젤란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콜롬버스실은 이용자 게임 이용 패턴을 분석하는 AI를 활용해 고의적으로 다른 이용자를 괴롭히는 ‘어뷰징’ 행위자를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마젤란실에서는 글로벌 데이터를 활용한 자동 번역 AI 모델 등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연구가 실시되고 있다.
엔씨소프트(이하 엔씨) 올해 1분기 매출은 478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9.4% 감소했지다. 연구개발비용은 122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7.7% 축소됐으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용 비중은 오히려 8%p 상승했다.
지난 2011년 출범한 엔씨AI연구소는 AI센터와 자연언어처리(NLP)센터를 축으로 운영된다. AI 센터 산하에는 게임 AI랩, 스피치랩, 비전 AI랩, 언어 AI랩, 지식 AI랩 등 5개 연구소가 가동 중이다. 이곳을 통해 엔씨는 AI를 활용한 캐릭터 디자인·모델링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캐릭터 콘셉트는 물론, 외관까지 AI로 만들어 3차원(3D) 아트웍에 적용해 그래픽 디자인 개발 효율을 높인다. 올해 하반기 중으로는 자체 개발 사내 AI 플랫폼을 출시해 임직원이 게임 개발에 AI 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크래프톤 또한 딥러닝 본부를 통해 게임 제작 전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공들이고 있다. 예컨대 캐릭터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 내 캐릭터 전투 밸런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AI 딥러닝을 사용해 실제 사람처럼 플레이하는 AI를 제작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크래프톤은 게임 제작 기간 단축과 게임 내 다양한 기능 구현을 위한 AI·딥러닝 기술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다.
다만, 크래프톤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용은 감소했다. 연구개발비는 88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7.7% 축소됐고,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용 비중은 전년동기대비 6.2%p 감소한 16.4%p로 집계됐다. 이는 독립 스튜디오인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SDS) 타이틀 ‘칼리스토프로토콜’ 개발이 완료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해외 게임사도 AI로 게임 그래픽 작업…전문가 “인력 채용 감소 가시화 될 것”=게임 개발업무 중 향후 AI 의존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분야는 게임 그래픽이다. 현재 수준 생성형 AI도 사람이 며칠 동안 작업해야 하는 게임 일러스트, 3차원(3D) 아트워크 업무를 짧은 시간 내 완성하는 성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는 AI가 그린 디지털아트 작품이 1등을 차지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건의 주인공 제이슨 앨런은 텍스트 입력을 통해 그림을 생성하는 AI ‘미드저니’를 통해 몇 차례 명령어만으로 디지털 아트를 생성, 대회 1등을 거머쥘 수 있었다. 이 같은 AI 기술 적용 분야는 충분히 게임 그래픽으로 확대할 수 있다.
한 게임 개발자는 “게임 개발 프로세스에서도 많은 부분을 AI가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주로 게임 그래픽 개발자가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AI를 통한 업무 효율 증대가 가장 높은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게임 품질관리(QA) 업무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으로 본다. 게임 감성이나 재미 등 상품성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유사한 의견을 냈다. 게임 개발 프로세스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시도됐으며, 최근에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임 개발자 인력 투입 감소 전망에 대해서도 빠르게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는 “챗GPT와 같은 AI가 등장하면서 게임사에서도 개발 프로세스에 AI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더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추세라면, 향후 4~5년 이내에는 엔트리급(1~3년차) 개발 인력 충원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11일(현지시간) 중국 레스트오브월드(Rest of World)에 따르면 중국 게임업계에서는 AI 기술을 작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비디오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충칭에 위치한 게임 스튜디오 일러스트레이터 쉬잉잉은 “캐릭터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 15명 일러스트레이터 중 5명이 올해 해고됐다”며 “AI가 이미지 생성기가 업무에 도입되면서 예전에 10명이 하던 일을 두 사람이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또, 항저우 게임산업 헤드헌터 로에 리는 “AI 붐, 규제 압박 등으로 때문에 작년에 일러스트레이터 일자리 수가 약 70% 급감했다”고 주장했다.
게임 플랫폼 ‘유니티’ 마크 위튼 부사장도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2023’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가상 인간 표정을 제작하는 데 6명 아티스트가 4~5개월 동안 투입됐다면, 생성형 AI는 같은 업무를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며 “생산 효율을 100배까지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선 AI를 둘러싼 저작권·윤리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AI는 인간 업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할 뿐 게임 개발 주체가 될선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재홍 한국게임정책학회장은 “AI 도입이 게임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과신하다간 AI 기술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를 놓칠 수 있으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AI는 어디까지나 기술일 뿐 인간 감성의 영역까지 AI에게 의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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