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웹툰과 규제下] “CP 계약 증가는 시대적 흐름” 선악 프레임에 반기든 플랫폼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지난 3월 ‘검정고무신 사태’를 계기로 창작자와의 불공정 계약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과거 열악한 창작 환경으로부터 작가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촉발한 출판업계를 시작으로 웹툰·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다양한 콘텐츠업계로 논의가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웹툰업계에서는 창작자 생태계 측면에서 플랫폼과의 직계약과 콘텐츠제작사(CP) 계약 간 질적 차이에 대해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매년 웹툰 작가와 작품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직계약 대신 CP 계약 비중이 늘어나는 데 부정적인 여론도 크다.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직계약 웹툰 비중은 약 88%였으나, 올해 60~70% 수준으로 줄었다. 카카오웹툰·카카오페이지 경우, 업계는 직계약 비중이 40% 내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대부분 작가가 직계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플랫폼보다 CP와 이중 계약했을 때 상대적으로 정산 문제 등 복잡한 문제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콘텐츠미래융합포럼이 조사한 웹툰 창작자 설문 결과에서도 국내 웹툰 작가 중 88.3%는 작품 계약 때 플랫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CP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11.7%에 불과했다.
◆‘직계약은 착하고 CP 계약은 나쁘다’?…이를 지켜보는 업계는=콘텐츠업계 전문가들은 웹툰업계 내 직계약 비중보다 제각기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 CP 계약이 성행하는 추세를 두고 ‘산업이 성장한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만화 시장이 침체한 상태에서 활로를 찾던 업계가 선택한 것은 ‘웹툰’이라는 새로운 형태 콘텐츠였다. 당시 웹툰 작가들로서도 주요 포털 플랫폼으로부터 지속적인 원고료를 받고 안정적인 작품 연재가 가능하다면, 계약에 있어 다소 불리한 내용도 어느 정도 감수한다는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연재 조건과 수익 배분 방식 같은 주요 내용을 제외했을 때 2차 저작권 수익 비율처럼 세분화해 따져봐야 하는 계약 조항도 많지 않았다. 웹툰 작가가 돈을 버는 방식은 플랫폼 페이지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사업자와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웹툰 작가와 플랫폼 간 계약 구조가 복잡하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2010년대 전후로 지식재산권(IP) 측면에서 웹툰 가치가 높아지면서 상황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작품 감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넘어 굿즈 제작·영화 애니메이션·드라마화 등 원작 IP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모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재 산업이 급속하게 팽창하고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전문 CP를 통한 계약과 그 외 부가적인 콘텐츠 사업이 체계화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박기수 교수는 “아무리 유명한 웹툰 작가라도 CP를 통하지 않고 작가 개인이 사무실을 차려 플랫폼과 직계약하는 사례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CP를 통해 플랫폼과 작품 흐름을 논의하고 부가적인 IP 사업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웹툰 산업이 성장하면서 등장한 CP는 단지 작가와 플랫폼 간 계약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창작에 있어 기본적인 편집을 비롯해 기타 도움이 될 요소들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박 교수는 검정고무신 사태가 보여줬듯 이 과정에서 작가 기본 권리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아직 업계에서 완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웹툰 IP 산업이 커진 데 따라 딸려 오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라며 “웹툰 창작자들 사이에서 복지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플랫폼과 CP, 저작권 전문 변호사 등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시스템을 다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플랫폼은 무조건 작가 착취하는 ‘갑’?…창작자 위한 업계 노력들=플랫폼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듯 국내 대표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창작 생태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먼저 네이버웹툰은 10년째 ▲콘텐츠 유료 판매 수익 ▲광고 수익 ▲지식재산(IP) 비즈니스 수익을 중심으로 하는 창작자 수익 다각화 모델 ‘파트너스 프로핏 쉐어(PPS)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PPS 프로그램 연간 규모는 지난 2013년 약 232억원에서 지난해 약 2조255억원으로 10년간 2조원 이상 성장했다. 이를 위해 네이버웹툰은 일본어, 영어 등 글로벌 서비스를 확대하고 현지 공모전이나 코믹콘 참가 등을 통해 현지 창작자 발굴과 사용자 저변 확대에 힘썼다.
그 외에도 네이버웹툰은 최근 정책·서비스·기술 등을 통한 창작 생태계 지원 프로그램 ‘웹툰위드(WEBTOON With)’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예컨대, 도전만화·베스트도전 창작자 전용 시스템 ‘크리에이터스’를 열어 점진적으로 기능을 추가하는가 하면, 이런 아마추어 창작자를 위한 수익 창출 기능도 연내 도입할 방침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 역시 지난해 문화 콘텐츠 창작자를 위한 문화 재단인 ‘카카오 창작재단’을 설립했다. 웹툰·웹소설 작가에 한해서는 국내 최초로 운영되는 재단으로, 같은 해 9월 ‘온라인 창작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온라인 창작 아카데미는 온라인 무료 강의 형태로서 수강을 원하는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이 정산 세부 구조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파트너 포털’도 지난해 7월 구축됐다. 이로써 CP를 통해 카카오엔터에 작품을 제공하는 작가도 직접 계약 유형·정산율·정산금액·거래액 등 세부 정산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올해 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웹툰 상생협의체가 지난해 말 발표한 상생협약문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웹툰·웹소설 창작자 복지 및 건강권 강화를 위한 계약서 개정안을 발표했다. 카카오엔터에 정기적으로 작품을 연재하는 모든 작가를 대상으로 지난 2월1일부터 휴재권, 분량 등 창작자 복지 증진에 대한 기존 권리를 계약서에 명문화하는 것이 골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계약서 개정 작업을 시작으로, 올해도 창작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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