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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 줄줄이 中 가더니…반도체 공장 통째로 헌납 우려 [DD인더스]

김도현 기자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터질 게 터졌다.”

지난 12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를 중국으로 빼돌린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에 대한 국내 업계의 반응이다.

이번에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는 삼성전자 상무와 SK하이닉스 부사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약 30년을 국내 반도체 기업에서 종사해온 그는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재직 시절 삼성전자 대비 크게 뒤처진 회사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린 장본인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초중반 메모리 업계 최저 제조원가, 최고 생산량 확대 등 기록을 세우면서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의 달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큰 성과를 낸 A씨는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승진하고 사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다. 이를 알게 된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당시 경영진을 질책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태양광 업계로 옮겨서도 산업 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등 역량을 뽐냈다.

그랬던 그는 2015년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 진세미를 설립하면서 해외로 떠났다. 이후 중화권 자본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다. 반도체 영웅이 한순간에 산업스파이로 전락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반도체 인력 200명 이상을 고액 연봉으로 유혹해 데려갔고 삼성전자 중국 시안 사업장에서 1.5킬로미터(km) 떨어진 곳에 해당 공장을 그대로 본뜬 ‘복제판 공장’ 건설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에 유출된 공장도면 등은) 삼성전자에서 30년 이상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구개발(R&D),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얻은 자료다. 최소 3000억원, 최대 수조원 가치를 지닌 영업비밀”이라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복제돼 동일·유사한 품질의 반도체가 대량 생산되면 국내 산업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반도체 업계에서는 A씨 행적에 주목하고 있었다. 중국으로 한국 반도체 기술과 인재를 지속 끌어갔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검찰 등에서도 관련 첩보를 접수했으나 A씨가 장기간 중국 체류하면서 수사에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삼성맨의 중국행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 지난 2021년 장단단 삼성전자 전 상무는 중국 우성반도체로 이직한 바 있다. 장 전 상무는 중국인으로 삼성전자 중국법인, 글로벌사업부 등에서 근무했고 중국법인 출신 첫 여성 임원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삼성전자 반도체 클린룸

이보다 앞서 중국 에스윈은 삼성전자에서 40년 이상 근무한 장원기 전 사장 영입을 시도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입사를 철회했으나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 외에도 중국 기업으로 이직하거나 기술을 빼돌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출신 인원이 수두룩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의 이직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 브로커를 통해 물밑 접촉하던 중국이 대놓고 한국 엔지니어 영입에 나서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굴기 강화 차원에서 기존 연봉 3~4배를 내세워 유혹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출신 교수는 “중국으로 옮기는 사례가 무수히 나오면서 삼성 프라이드가 사라진 지 오래”라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국내 반도체 미래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반도체 업계에서는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인재 보호를 위한 혁신적인 시스템을 촉구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술유출 범죄는 약 100건 적발됐다. 이중 절반 이상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재판으로 넘겨지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실형과 재산형은 한 자릿수 비중에 그쳤다.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현행 제도에서는 중국에서 한탕 해서 처벌받더라도 남는 장사”라면서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나 사후 제재도 강력하게 해야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정년을 다한 반도체 인력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일시적이 아닌 영속성 있는 관점에서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검찰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근간을 흔들어 우리 경제안보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범행에 해당된다”며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손해를 일으키는 반도체 기술 등 영업비밀 및 국가핵심기술 침해행위에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도현 기자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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