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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음극재' 뜨는데...韓 기업 매출·시장 경쟁력 충분할까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기자
포스코퓨처엠 세종공장에서 생산되는 음극재. [ⓒ 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 세종공장에서 생산되는 음극재. [ⓒ 포스코퓨처엠]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전기차·2차전지(배터리) 시장이 지속 성장함에 따라 최근 배터리 핵심소재 사업에 관심을 두는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올해는 기존 소재 업체들이 ‘음극재’를 겨냥해 신사업 확대를 추진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를 두고 시장성에 대해선 의문이, 탈중국화 도전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시선이 따르고 있다.

지난 6월22일 국내 주요 양극재 제조사인 엘앤에프는 일본 ‘미쯔비시케미컬 그룹’과 전기차 배터리용 차세대 음극재 사업 업무협약 체결 소식을 전했다.

미쯔비시케미칼 그룹은 글로벌 전해액, 음극재 주요 공급사 중 하나다. 음극재 분야에선 천연흑연의 단점인 짧은 충방전 수명 문제를 해결한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로써 인조흑연 대비 가격은 저렴하면서 품질을 뛰어난 음극재를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선 양극재 제조 기반과 노하우를 보유한 엘앤에프가 생산 전반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지난 16일에는 배터리용 동박 시장 강자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가 프랑스 스타트업 ‘엔와이어즈’에 79억원을 투자하며 차세대 음극재 개발에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엔와이어즈는 차세대 실리콘 음극재 제조 기술을 보유한 회사로, 현재 연간 2.5톤 규모의 제품 생산이 가능한 파일럿 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2027년 본격적인 상업 양산 규모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올가 부르착 엔와이어즈 대표,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왼쪽부터)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올가 부르착 엔와이어즈 대표,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음극재는 배터리에서 충전속도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소재지만 국내에선 그동안 양극재에 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양극재 시장에서 가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다가 기술 격차, 상업성 측면에서도 음극재를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양극재 수요도 매년 급증하면서 신규 투자의 대부분이 양극재 생산능력 확대와 신제품 개발에 투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할수록 음극재를 대하는 업계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주요 시장인 미국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라이벌 국가 중국을 견제하는 조항들을 담은 것이 음극재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IRA 내용들은 중국산 소재를 사용한 배터리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는 기조지만, 현재 전세계 음극재는 공급량의 약 70%를 중국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음극재 주요 소재인 흑연의 중국 생산 비중도 이와 비슷하다.

따라서 지나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 유연하게 경쟁하려면 음극재 독립이 권장되는 상황이다. 다만 신사업 추진과 별개로 한국 기업들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시장 점유율과 상업성, 경쟁력 등에는 다소 의문 부호가 따른다.

현재 한국 기업 중 글로벌 음극재 시장에서 영향력을 보유한 기업은 포스코퓨처엠이 유일하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모두 생산 중인 포스코퓨처엠은 매분기 매출의 약 10% 정도를 음극재 판매로 벌어들이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약 8% 전후다. 가격 경쟁력은 중국 기업들이 앞서지만 표면처리 공정 차별화를 통해 앞선 품질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 자동화를 추진해 제조원가 측면에서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

하지만 음극재 사업의 성과는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다. 포스코퓨처엠 실적 공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4177억원이었던 양극재 매출은 이번 분기 7863억원까지 약 2배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음극재 매출은 465억원에서 지난 1분기 677억원까지 늘었다가 2분기엔 다시 565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사업성 측면에선 유의미한 성장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시장 장악력과 저가 공세,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더뎌진 유럽 시장 고객사들의 수요 감소가 원인으로 꼽힌다.

2020년 글로벌 음극재 시장 점유율. BTR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강세다. [ⓒ 코트라, GGII]
2020년 글로벌 음극재 시장 점유율. BTR을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강세다. [ⓒ 코트라, GGII]

이처럼 이미 수년 이상의 제조, 공급 노하우를 보유한 포스코퓨처엠도 음극재 사업의 규모를 쉽게 키우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신규 진입의 경우 현실은 더 녹록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엘앤에프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음극재 신사업 확대 계획을 밝히면서 타깃 시장이나 매출, 점유율 목표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음극재는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기술력을 포함해 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며 “자체 기술을 확보하거나 생산 안정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라도 음극재 생산 기술 또는 양산 경험을 보유한 곳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다소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 국내 기업들이 음극재 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추가 매출원 확보보단 탈중국 기반 마련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을 것”이라며 “IRA 발효 이후 음극재 탈중국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간 음극재는 투자 대비 수익률(ROI)도 낮다는 인식 아래 기업이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요즘 분위기는 다르다. 잠재 수익보단 위기대응 차원에서 움직임이라 보면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사를 넘어 배터리 완제품 제조사들도 중국 외 음극재 및 관련 소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호주의 노보닉스와 인조흑연 공동개발협약을 맺고 전략적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10년간 5만톤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는 조건이다. 앞선 5월엔 SK온이 미국 웨스트워터 리소스와 배터리 음극재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SK온 배터리에 특화된 친환경 음극재 개발이 목표다.

포스코퓨처엠도 음극재 생산능력을 지속 확대할 방침이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충남 세종 공장에서 7만4000톤의 천연흑연, 포항에서 8000톤의 인조흑연 음극재를 양산하고 있으며,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음극재 수요 증가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2030년 37만톤까지 늘리기로 했다.

음극재 시장은 당분간 성장세를 유지한다.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음극재 시장은 올해 76억달러(약 9조6000억원)에서 276억달러(약 27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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