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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김범수에 항의서한 보냈지만 무응답”… 또다시 거리 나온 카카오 노조

이나연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17일 오후. 카카오 공동체 조합원들이 하얀 우산과 현수막을 들고 카카오 본사와 계열사들이 있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 거리로 나왔다. 카카오 계열사들에서 권고사직·희망퇴직·회사분할 등을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 개선되지 않아 고용불안이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날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소속 카카오지회(카카오 공동체 노조 ‘크루유니언’)는 ‘무책임경영 규탄,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카카오 공동체 2차 행동. 크루들의 행진’ 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26일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에 항의서한을 전달한 첫 집회에 이어 두 번째 집회다.

노조 측은 “적자 누적과 경영진 이익에만 집중하는 탐욕적인 경영에 대한 사과 및 책임경영을 요구한 1차 집회에 사측이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추가 집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신고된 집회 참가자는 약 200명으로, 노조 측 추산으로는 300여명이 참여했다.

이날 집회는 카카오 아지트가 있는 판교역 광장 앞에서 시작해 구조조정 중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투썬월드 빌딩) ▲엑스엘게임즈(네오위즈판교타워) ▲카카오엔터프라이즈(H스퀘어) 등 카카오 계열사 앞을 행진하는 방식이었다.

노조 측이 준비한 하얀 우산에 책임·소통·사과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조합원들은 ‘무책임 경영 / 회전문 인사 / 브라이언(김범수 센터장) 사과하라’, ‘경영실패 책임 떠넘기지 말고 고용안정 책임져라’, ‘일방적 리더십 이제 그만, 탐욕적 경영 그만해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판교역 광장부터 H스퀘어까지 1시간가량 행진했다.

행진 도중에는 카카오 계열사 거점별로 각기 다른 단어가 적힌 블록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카카오 아지트 앞에서는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이 불통·탐욕·일방적 리더십 블록을, 엑스엘게임즈 앞에서는 진창현 엑스엘게임즈 분회장이 고용불안·권고사직·차별 블록을,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앞에서는 오치문 카카오 노조 수석부지회장이 무책임·회피 블록을 차례로 부쉈다.

서승욱 지회장은 직원들이 경영난으로 고용 불안을 겪는 와중에 카카오 경영진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도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는 아이러니가 무책임 경영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올 2분기 SM엔터테인먼트 인수 효과를 제외한 카카오 매출은 1조8040억원으로,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1% 감소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는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이 단행 중이다.

카카오게임즈 손자회사 엑스엘게임즈는 지난 1일부터 지난주까지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노조 측에 따르면 엑스엘게임즈는 목표로 하는 희망퇴직 인원 규모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최근 사내 공지사항에 권고사직을 실행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러한 카카오 계열사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올해 상반기 정보기술(IT)업계 최고 경영자(CEO) 연봉 1위는 스톡옵션을 행사해 100억원대에 가까운 보상을 받은 남궁훈 전 카카오 CEO였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앞서 1조원대 투자를 받았지만, 경영상 어려움으로 지난 6월 고연차 직원 희망퇴직에 준하는 넥스트 챕터 프로그램(NCP)을 가동한 바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궁 전 CEO 다음으로 연봉이 높았던 경영진은 26억9300만원을 수령한 이진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대표다. 다만, 이진수 대표가 받은 보수는 카카오페이지 TF장을 겸직해 카카오로부터 급여 7500만원을 받은 것과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26억1800만원 이익을 더한 규모다.

경영 실패로 사퇴한 백상엽 전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대표는 회사 고문으로 재계약해 다시 급여를 받고 있다. 노조 측은 경영 악화로 임직원에게 희망퇴직까지 받는 가운데 백상엽 전 대표 고문 위촉은 부당하다고 반발했지만,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동종업계 이직을 막기 위한 통상적인 절차라는 입장을 내놨다.

서 지회장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끌던 임원이 1년도 안 돼 갑자기 사라지고 사업 방향이 바뀌어 업무 재배치로 크루들이 혼란을 겪는 상황에서 사라졌던 임원은 어느새 계열사 대표가 돼있다”며 “카카오 회전문 인사 실상”이라고 꼬집었다.

오치문 수석부지회장은 “1차 집회 후 (김범수 센터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으나 회사는 침묵했고, 그동안 들려온 소식은 김 센터장이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을 맡는다는 것과 브라이언 펠로 모집이었다”며 “회사는 곪아 터지는데 외부 이미지만 신경 쓰는 게 참담하다. 김 센터장은 크루들 앞에 나타나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 측은 이번주 중 이사회를 통해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전 경영진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열린 자세로 성실히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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