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검정고무신방지법’, 연내 통과 기정사실…“안타까운 사건으로 법안 선동”

이나연 기자
15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15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올해 초 ‘검정고무신 사태’를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드라이브를 거는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문화산업공정유통법)’ 연내 통과가 사실상 확실해졌다. 하지만 산학계에선 이중규제, 금지행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 입증 책임 문제 등을 이유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15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이달 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국무조정실 주도하에 수정된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조정안이 안건에 오른다. 이 법안은 당초 우려를 표한 업계뿐 아니라 정부부처간에도 이견을 보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바 있다. 문체부가 한발 물러나 법안 내용을 재정비한 만큼, 입법을 재추진하는 움직임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날 한국미디어정책학회와 정보통신정책학회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안타까운 검정고무신 사태는 작가와 제작업자 간 관계에 따른 사건인데 반해, 이 법안은 제작업자와 유통업자 관계를 다뤄 검정고무신 사태와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비판하자면, 문체부가 법안 통과를 추진하며 중요한 취지로 내세우는 해당 사건은 여론몰이를 위한 선동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은 지난 3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법정 공방을 벌이던 도중 별세한 사건을 계기로 문체부가 추진하는 법이다.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이라 불린다. 현재 ‘문화산업진흥기본법’과 ‘콘텐츠산업진흥법’ 등엔 콘텐츠 제작·유통방식 다양화에 따른 구두계약 관행·도제식 관례 같은 구조적 한계를 감안해 공정거래 질서 관련 조항들이 규정돼 있다.

그런데 이들 조항이 강제력 없는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개별 법령에 분산된 내용을 통합해 공정한 유통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이 법안 제정 취지다. 산학계가 주목하는 건 문화산업공정유통법 핵심인 사업자 금지행위를 규정한 제13조다.

이 조항은 불공정행위를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금지행위 ▲문화상품 창작·제작 기반 보호를 위한 금지행위 ▲법 위반사실 신고 및 분쟁조정 신청 등을 이유로 문화상품제작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의 세 가지 유형으로 명시한다. 공정거래법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가 있는 사업자 간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보지만, 이 법안은 특정 기준 없이 사업자가 한 행위 전체를 규율한다는 점에서 제재 수위가 더 높다.

문제는 금지행위 조항 내용 자체가 모호해 법안 수범자인 제작업자와 유통업자는 물론, 법을 잘 아는 학자들조차 금지행위 조항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다. 업계와 전문가 대다수가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 통과될 경우, K-콘텐츠 경쟁력 하락과 산업 전체 위축을 한목소리로 우려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정고무신 사건은 잘못된 계약에 의한 불행한 사건이지, 이를 전례 없는 규제 법안 근거로 삼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 이승민 교수는 “법안 내용을 보면 문체부가 대놓고 규제 부서로 거듭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며 “영역을 특정하기 힘든 문화산업에 대해 포괄 규제를 도입하면 문체부는 ‘옥상옥’이 될 텐데 그것이 부처 목표인지 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이 벤처캐피탈 또는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콘텐츠 플랫폼의 단계별 투자 조건과 적극적인 ‘밸류에디드(value-added)’ 컨설팅을 법적으로 봉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영근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콘텐츠 플랫폼들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 영리기관”이라며 “불확실성이 높은 신인 창작자들에 대한 투자 및 사업화에 대한 유인이 사라져 결과적으로 불확실성이 낮은 유명 창작자 작품만을 플랫폼에서 유통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밝혔다.

최영근 교수는 “지난날 한국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파괴력을 간과해 국내 OTT 허가를 늦게 내줌으로써 국내 시장을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며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을 오히려 미국처럼 단계별 투자조건과 value-added 컨설팅을 법제화하는 내용으로 바꿀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