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2023결산/정책] 유례없는 통신비 인하 압박·R&D 예산삭감 사태 지속…‘식물’ 방통위

백지영 기자
통신3사 로고 [ⓒ 각 사]
통신3사 로고 [ⓒ 각 사]

[디지털데일리 백지영 기자] 올해는 통신사에 대한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압박이 유례없이 큰 해였다. 보통 대선이나 총선 등을 앞두고 선심쓰기식 공약으로 진행됐던 것과 달리 대통령이 지난 2월 비상경제민생안정회의에서 직접 ‘통신은 카르텔’이라고 비판하고 나선데 따른 것이다.

이후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7월과 11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과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각각 발표하며 본격적인 요금제 인하 정책에 나섰다. 이에 지난해 30GB 구간의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한 바 있는 통신사들은 7~8월 40~100GB 구간의 요금제를 출시하고, 최근엔 SK텔레콤을 시작으로 기존 5G 스마트폰의 LTE 요금제 가입 제한까지 풀었다.

내년에는 5G 요금제 최저 가격은 현 4만원대 중후반 수준에 3만원대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통신3사는 가입자당평균매출(ARPU) 하락을 우려하고 있으나, 정부의 이같은 기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정부는 통신3사가 지난해에 올해에 걸쳐 반납한 5G 28㎓ 주파수를 활용할 제4이통사 찾기에 나선 만큼, 경쟁압박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오는 19일까지 28㎓ 신규사업자의 주파수 할당 신청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신규 사업자 유치를 위해 최저경쟁가격(전국 기준 742억원)과 망 구축의무(6000대 기지국) 등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지만 수익성 담보가 쉽지 않은 만큼 도전자가 나설지 관심이다.

지난 11월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지난 11월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 대통령실]

◆삭감된 R&D 예산, 복구될까…과학계 반발 커져

과학계에도 ‘카르텔’ 논란이 재연됐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은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른바 ‘R&D 카르텔’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내년 주요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은 돌연 올해보다 16.6% 삭감한 25조9000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기업 보조금 성격의 나눠주기식 사업, 성과부진 사업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결과”라고 해명했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7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향후 3년 간 글로벌 R&D 투자에 5조4000억원 이상 투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윤석열 정부 R&D 혁신 방안’과 ‘글로벌 R&D 추진 전략’을 발표하며 과학기술계 달래기에 나섰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글로벌 R&D 투자 규모를 정부 R&D의 1.9% 수준에서 6~7% 수준까지 확대하고 혁신·도전적인 R&D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한편 지적재산권(IP) 스타과학자 육성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과기노조는 물론 대학원생, 과학고 학생들까지 가세해 정부의 R&D 예산삭감을 비판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지난 11일부터 R&D 예산 원상복구를 위한 천막농성에 돌입입했다. 여야는 오는 20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협의하기로 한 가운데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의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사퇴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회의 탄핵안 처리를 앞두고 사퇴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상혁->이동관->김홍일?…업무마비 ‘방통위’

그런가하면 올해는 방송통신위원회로서는 최악의 해로 기억될 듯 하다. 벌써 올해만 세 번째 수장 교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초 오는 7월 31일까지 임기였던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은 2020년 3월 TV조선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선임하고, 같은해 4월 TV조선의 재승인 평가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로 지난 5월 불구속 기소됐다.

이어 5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 위원장의 면직안을 재가하고, 8월28일 이동관 전 위원장이 취임했지만, ‘가짜뉴스 척결’과 ‘공영방송 정상화’에 올인해 오던 이 위원장이 이달 1일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사의를 표명하면서 또 다시 위원장 공백 사태가 됐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이 전 위원장 면직안 재가 5일만인 지난 6일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차기 위원장으로 지명한 상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지낸 윤 대통령의 검사 선배로 방송통신 분야 전문성 부족이 약점으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방통위는 문재인 정부 인사인 한상혁 전 위원장을 비롯해 내부 직원들을 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며 어수선해졌고, 끝내 한 전 위원장의 면직 처분으로 석달 가까이 위원장 공백을 겪었다. 하지만 이동관 전 위원장이 100일도 채 되지 않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자 사실상 ‘식물위’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이같은 방통위 사태를 두고 예견된 파행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방통위는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의 과반이다. 때문에 합의제 기구라는 운영 원칙을 살리지 못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 논리에 좌우되고 있는 형국이다.

방통위설치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여당 교섭단체 1인·야당 교섭단체 2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선을 염두에 둔 대통령실이 후임 위원장을 임명했으나, 이미 수차례 여야 정쟁에 휘말린 만큼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지적이다.

백지영 기자
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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